로사의 파란만장 모스크바 입국기밤 8시에 도착했어야 하는 에어로플로트 항공기는 10시가 다 돼서야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10시20분에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가는 국내선을 예약해놓은 우리로서는 마음이 조급해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
트랜짓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부리나케 뛰어올라가 긴 줄을 서서 기다린 후 트랜짓을 하려고 한다니까 아래로 내려가 입국신고 먼저 하라고 윽박지르듯 말을 한다.
다시 헐레벌떡 내려갔는데 줄도 제대로 설 수 없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 늘어선 줄이 끝도 보이지 않는다. 10시2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전산시스템이 낙후된 건지, 업무를 보는 사람의 처리속도가 늦은 건지 좀처럼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곳곳에서는 끼어드는 새치기를 경쟁이라도 하듯 하고있다.
트랜짓이고 뭐다 포기하고, 모스크바 공항 모양새를 좀 더 찬찬히 뜯어 살펴본다. 인천공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좁고 열악한 공항을 보고 있자니 미국과 함께 국제정치질서를 좌우했던 나라가 바로 이 나라였나 싶은 의문이 생기며 묘한 기분이 든다.
10년은 걸렸음직한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밖으로 나와 티켓 환불을 받고 다른 항공권을 사기 위해 에어로플로트 라고 쓴 창구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오만하고 거친 표정의 러시아 여자가 '건너편 창구로 가라'고 간신히 대꾸를 한다.
무거운 가방과 기다림에 지친 몸을 이끌고 100미터나 떨어져 있는 건너편 창구로 가서 또다시 한참을 기다린 후, 다시 처음부터 설명을 한다. 그 여자 역시 우리가 처리할 일이 아니라며 건너편 창구로 가라고 떠넘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우리는 그녀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우왕좌왕하기를 몇 번, 비행기 티켓 환불은 고사하고 티켓이나 사서 목적지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티켓을 사겠다니까, 처음 그 여직원이 버럭 화를 내며 "난 너네들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 옆 창구로 가라"며 훽 돌아선다. 세상 참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당한다며, 제니퍼와 둘이 할말을 잃고 서 있는데 저쪽에서부터 한 젊은 러시아 여자가 울며불며 달려와 창구에 대고 하소연을 한다. 순간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기나라 말 100% 다 통하는 러시아인도 저렇게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야 오죽하랴.
사기꾼은 늑대같이 달려들고인내심을 갖고 옆 창구에서 비굴한 웃음까지 지으며 간신히 11시20분에 떠나는 국내선 티켓을 산 후 국내선이 다니는 제2공항으로 가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불량기가 넘치는 택시 삐끼가 다가와 어디로 가느냐며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가니 다른 삐끼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같이 와르르 몰려드는 통에 질겁을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간다.
처음 그 늑대가 또 나타난다. 지나가는 공항 직원을 붙들고 '이 사람은 여기 직원이니 믿고 너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말해봐라'고 한다. 직원이라고 소개받은 제복 입은 남자에게 2청사로 가야한다고 하니, 2청사로 가는 셔틀 버스는 이미 끊어졌단다. 택시타고 2청사로 가봐야 11: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 수속도 못할 테니 모스크바 시내로 가서 하룻밤 자고 내일 출발하는 게상책이란다. 허걱,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에어로플로트 직원이 타지도 못할 티켓을 팔았단 말인가. 일단은 2청사로 간 후 사태를 보자며 2청사로 가는 택시비를 물으니 자그만치 12만원을 달란다. 무슨 택시비가 비행기삯보다 비싸냐며 버럭 화를 내면서 6만원에 흥정을 하고, 2청사를 향해 달린다. 마피아 두목같이 생긴 택시기사는 침침한 가로등빛 아래서 앞도 잘 보이지는 않는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짙게 깔린 모스크바의 어둠과 불어 닥치는 칼바람은 점점 우리를 공포 속으로 몰고 간다. 오늘 밤 안으로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무사히만 갈 수 있다면 하느님께 무조건 무한한 감사를 드리마고 다짐을 한다.
"속았어요 속았어"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2청사로 도착하여 헐레벌떡 탑승수속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탑승을 위해 줄을 섰는데, 바로 옆에 에어로플로트 항공사에서 씨름할 때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6년을 한국에서 살다 왔다는 그 남자는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를 닮았다. 우리가 1청사에서 여기까지 6만원을 주고 택시를 탔다고 하니, 무료셔틀버스가 있는데 뭐하러 그런 돈 낭비를 했냐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짓는다. 너네 나라 사람들 정말 나쁘다, 불친절하고 사기치고, 하물며 직원까지 늑대들과 작당을 하고 몰려드는데 우리가 어떻게 당해 내냐며 괜스레 죄 없는 그 남자를 붙들고 항의를 한다.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그가 고맙기도 하지만 가엾게 느껴진다.
오호 통재라!1시간여의 비행 끝에 목적지인 상트베르크에 도착한다. 패트릭 스웨이즈 닮은 그 남자와 작별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제니퍼가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호텔의 픽업서비스를 이용해 시내에 있는 Petro Palace Hotel에 무사히 들어선다. 아, 살았구나. 드디어 살아서 왔구나, 따스한 침대에 누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잠을 청하려는 순간 퍼뜩 그 남자, 패트릭 스웨이즈가 생각난다. 우리의 편안한 그리고 재미있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 여행을 위해서는 그런 남자 하나쯤은 잘 물어놨어야 했는건데 그의 연락처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보냈단 말인가. 상트행 비행기를 놓친 것보다 그를 놓친 게 더 애통하고 원통하니 이를 어쩌랴... 오호 통재라!
/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글&사진 로사 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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