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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역사 산책] 감당제(甘棠第)-2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02-04 13:00:47
  • 수정 2010-02-04 13: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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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4호, 2월5일
타고난 재력, 공익을 위한 열정, 각양각색의 삶을 살던 매판 - 하감당

 '매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홍콩에서 가장 부유하고 명성이 높던 계급으로 영국자본의 선진적 기업이었다. 그 중 이화양행(怡和洋行·아래 사진)의 매판이 가장 부유했으며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감당제의 본래 주인인 하감당(何甘棠·1866-1950)의 또 다른 이름은 하계당(何啓棠)이며 자는 체생(棣生)이다.

이화양행의 부매판을 지낸 그는 본래 재력이 있던 데에다 사업수완까지 좋아 많은 부를 축척하였고, 그로 인해 크고 아름다운 저택을 지을 수 있다.

하감당은 매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먼저 그는 부호 하동(何東)과 하복(何福)의 친동생으로 형들을 따라 졸업 후 이화양행에 들어가 재직하였고, 후에 형들의 보살핌을 받아 부매판의 지위까지 올랐다. 두 번째로 그는 혼혈아였다. 유라시아의 혼혈인들은 중국과 서양 간의 접촉이 낳은 사람들로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홍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으로 그는 형들과 마찬가지로 당시홍콩의 최고학부(중앙서원·中央書院 (하감당이 중앙서원에서 공부할 당시 서의서원 西醫書院은 아직 개설되지 않았다))에서 공부하였다. 이때 받은 서양식교육은 이후 그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감당은 비단 재력과 사업수완 뿐 아니라 공익을 위한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화의원(東華醫院)의 주석이 되었을 때(1907년), 재산을 기부하여 메이부인부녀회(梅夫人婦女會)를 건립하였으며, 성요한구급대(聖約翰救傷隊)의 설립자였고 화상공국(華商公局)을 제창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렇듯 그가 맡은 공직은 부지기수였다.

하감당은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흥미 또한 광범위하여 영화촬영, 월극, 중의, 재배, 풍수학 등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는 1927년 마사회 회원이 되었고 그의 애마 '甘棠第號'는 1929년 큰 경기에서 승리하였다. 그리하여 하감당이 일등 마주가 되었다. 그는 일제치하시기 마사회 주석을 맡았고, 중국인으로서 그 지위에 오른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렇듯 하감당은 그 누구보다 각양각색의 삶을 살았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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