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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낙향(落鄕)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03-18 11:07:53
  • 수정 2010-03-25 1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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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9호, 3월19일
 저는 1985년 11월 홍콩에 부임한 이후 태국, 필리핀, 대만에서의 생활을 포함하여 25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해외생활을 접고 지난 세월들을 정리하며 돌이켜 보니 많은 생각과 추억들이 활동사진처럼 펼쳐집니다. 홍콩을 떠나면서 그동안 제가 느끼고 생각해온 몇 가지 소회를 적어봅니다.

저희 가족에게 있어 가장 보람된 일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한 것입니다.

제가 홍콩에 부임할 때 큰 아이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작은 아이는 1학년을 다니고 있었는데 영어를 모르니 바로 ESF학교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ESL 클래스를 운영하는 Sear Rogers International School(구룡 소재)을 찾아가서 상담을 하였는데, 문제는 학년이 한국과 반 학기(7세 입학한 경우) 내지는 한 학기 반(8세 입학한 경우)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큰 아이는 그나마 다행히 P6로 가게 되었으나 작은 아이는 P4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1학년 마친 아이가 어떻게 4학년으로 갈 수 있냐고 항의하며 P3로 낮춰달라고 사정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연령에 맞는 학년(영국의 초등학교는 만 4년8개월에 입학함)에 들어가야 하며, 제 학년에서 공부를 따라가게 하는 것은 학교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 둘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한국학생 몇 명을 모아 8월까지 ESL 코스를 밟게 하였습니다. 장소는 저희가 센트럴에 있는 교회 건물의 방 하나를 빌리고, 학교는 선생님을 파견하였습니다. 9월 신학기가 되어 수업이 시작되었으나 저희는 작은 아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마운 일은 학교에서 방과 후 다른 학년 선생님을 시켜 작은 아이에게 별도의 보충수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 과외를 학부모가 아닌 학교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저희 아이 둘 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여 큰 아이는 King George V에, 작은 아이는 Kowloon Junior에 진학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미국에 가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큰 아이는 미국 변호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월가의 Portfolio Manager가 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외국의 교육이 우리와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저의 큰 아이는 홍콩에서 미국의 고등학교 Boarding School로 갔으나 저의 작은 아이(딸)는 저와 함께 태국, 대만으로 같이 다니면서 International School에 다녔습니다. Taipei American School에 다닐 때 학교 오케스트라에 지원하여 오보를 불게 되었습니다. 처음 오보를 만지게 되니 학교에서는 오보 연주자를 초청하여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오보는 비싼 악기여서 저희가 사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학교에서 오보를 빌려주고 집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과외, 특별활동 비용을 모두 부담하니 International School의 학비가 비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과외 비용을 모두 학부모가 따로 부담하지 않습니까?

홍콩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직업의식이 투철하며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직원을 채용해 보면 얄미울 정도로 계약적입니다. 계약대로 일하는 것이지 회사에 대한 사명감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냉철하게 생각하면 이게 더 편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한국의 노조를 보십시오. 회사가 약자인 고용인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직원 채용 인터뷰를 할 때 부모 직업을 물어 보면 청소부라거나 경비원이라고 떳떳하게 말합니다. 제가 일하던 사무실 빌딩의 화장실 청소하는 허리가 구부러진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이 분은 방학 때만 되면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초등학생인 손자가 물통을 들고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홍콩사람들은 좁은 땅에서 다닥다닥 모여 살지만 우리보다 마음의 여유는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갖게 되는 것 같고.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갈 때 뒤에 사람이 따라오면 올 때까지 잠시 문을 잡아줍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우리는 뒤 사람 생각할 여유도 없이 확 닫고 나가지요.

비가 온 다음에 길을 가다 보면 달팽이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피해갑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역시 달팽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두 분이 걸어가면서 달팽이를 하나하나 주워서 옆의 화단으로 옮겨 주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부처님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절의 스님들은 여름에 3개월 동안 산문 출입을 금하고 선방에서 수행을 합니다. 하안거라고 하지요. 이는 비가 오는 철에는 벌레들이 땅 위로 올라오기도 하고 길 위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밟을 수도 있어 산문 출입을 금한데서 유래합니다.

홍콩사람들에게 돈은 할아버지 이상입니다. 새해 인사가 돈 많이 벌라고 하는 거니까. 논, 밭 같은 토지를 보유하고 농사를 지을 땅도 없고, 소유할 대지도 없으니 오직 현금만 쥐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은퇴를 하고 노후생활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다 보니 이들의 사고 방식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콩의 잘 짜여진 편리한 시스템에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저희 가족의 홍콩생활에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고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 더욱더 번창하시고 또 여러분의 작은 소망들이 모두 아름답게 열매 맺는 홍콩생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3월 19일
류재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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