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고순군 엄마네 그리고 해삼 멍게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연다. 여전히 날씨는 잔뜩 흐려 있고 춥다. 다행인 것은 비가 멈췄다는 것이다.
흑산도에서 오전 9시30분에 떠나는 홍도행 쾌속선을 탄다. 30여분 만에 도착해 선착장으로 나간다. 홍도의 바닷바람이 세차게 우릴 맞는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온 해삼이며 멍게, 소라, 전복 등을 부둣가 양 옆으로 쭉 늘어놓고 외지인을 향해 한 점만 먹어보고 가라며 소리를 친다. 회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의 입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그러나 문제다.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다. 이런 곳에 현금출금기가 있을리 만무하다. 섬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부두에서 잠시 만난 아저씨가 있어 현금출금기가 혹시나 있는지 물어보니 저 언덕배기에 있는 우체국에 가면 된다며 우릴 그곳까지 데려다 주신다.
홍도우체국, 말 한 마디 붙이면 금방이라도 볼이 발그스레해질 것 같은 수줍은 섬처녀를 닮은 홍도와는 달리 관공서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곳이다.
돈만 뽑고 나가기가 멋쩍어 조용히 앉아있는 중년의 여직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홍도에는 주민이 몇 명이나 사느냐고 말을 붙인다. 대답은 의외다. 자긴 모른단다. 온지 몇 개월 밖에 안돼서...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쪽으로 발령을 받아 왔으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곳 거주민의 사정은 반쯤 꿰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며 성질대로 쓴 소리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아들이 있어 참는다. 손님이 오고가는데도 눈길 한 번, 말 한마디 안 건네는 우체국 직원의 뚱하고 무심한 태도가 영 마뜩찮다.
우린 다시 부둣가로 내려가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고 인심이 후해 보이는 '고순군 엄마'네에 들어간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고순군은 아마도 그 집 장남이 아닌가 싶다.
전복하고 해삼, 멍게, 소라를 섞어 한 접시에 2만5천원이란다. 아들 진호는 회치는 할머니 옆에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뒤져보며 신기해 한다. 할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마련한 회 한 접시를 포장마차 안에서 먹기 시작한다. 주황빛 멍게의 향긋함, 그윽하고 진한 맛이 나를 맛의 천국으로 인도한다. 해삼은 싱싱한 정도가 지나쳐 씹기조차 힘들 정도로 단단하다. 초고추장에 1분정도 담가놓으니 살짝 부드러워 진다. 소라도 맛있고 자연산 전복의 맛도 기가막혀 한 접시를 뚝딱 비우고는 또 한 접시 주문해 먹어치운다.
유람선은 출발하고
12시30분 유람선은 출항하고 날씨는 아직도 매우 춥다. 사진 찍는 손이 시리다. 세찬 바닷바람에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한기가 몸 속으로 파고든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고 파도도 높지 않아 다행이다. 유람선을 타기에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날씨가 흐려 파란 하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좀 아쉽지만 안개가 살짝 끼어 약간의 몽환적인 사진이 나온다. 유람선이 섬을 한 바퀴 돈다.
관광객은 이렇게 추운 날에도 유람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유람선 뒤쪽에서는 베테랑 가이드 아저씨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홍도 바다에 불쑥불쑥 솟아난 바위는 모두 괴암괴석이고, 그 위로 자라있는 소나무란 소나무는 분재요 정원수다. 짙푸른 바다와 기암괴석, 정원수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섬 전체가 천상의 정원 같다.
유람선 밖이 너무 추워 실내로 들어가 솔잎꿀차를 한 잔 주문해 마신다. 매점 아저씨가 꽤나 친절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에 살다보니 이곳 사람들까지도 마냥 친절한가 보다.
곱은 손을 녹이고 다시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둘러보니 가이드 아저씨가 찍어놓은 관광객용 샘플 사진이 보인다.
그러다 내 눈이 한 사진에서 딱 멈춘다. 아니 이럴 수가.... 문학과 삶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며 밤을 지새던 여고동창생 선희의 사진이 그곳에 떡하니 걸려있다.
"이건 또 뭔가요!~~~"
/ 계속.....
<글·사진 로사 권 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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