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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다시 쓰는 메이드별곡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12-23 10:47:26
  • 수정 2011-01-06 11: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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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6호, 12월24일
 처음 위클리홍콩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연재로 신변잡기하며 쓴 수필이 있었는데 제목하야 '메이드별곡'이었습니다. 홍콩에 오래 계셨던 분들은 바로, 아! 그거! 하시겠지만, 요즘 홍콩에 발을 담그신 주재원분들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은 이게 뭔소리지? 하실겁니다.

뭐, 별건 아닙니다. 홍콩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건 아니건 상관없이 각 가정에 외국인 가정부 한 명씩을 고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불거지는 일들을 써내려간 글이었죠. 그런데 말이죠, 그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는데 그 이유가 저처럼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해서 당황할 때 제 글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거나 동병상련 속에서 위로를 받곤 하셨던 거죠. 그렇지만 외국 고용인들을 폄하한다고 하여 쓴 소리를 안 들은건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하고 싶은 얘기는 풀어놔야 직성이 풀리니 제 성질대로 좍좍 풀어보겠습니다.

우리 집에서 6년을 일하며 동고동락했던 안티(Aunt) 애드나가 이제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며 그간의 질긴 인연을 정리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정이 많이도 들었고 저 역시 그 안티가 6년간 애들을 돌봐주고 집안 살림도 완벽하게 해줘서 마음 놓고 격한 바깥일에 매진할 수 있었기에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텁니다. 6개월간 우리 집에서 있다 돌아간 안티 얘긴데요, 이런 불미스러운 얘기를 할 때는 이름을 들먹이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입각해 이름은 생략하겠습니다. 그치만 그 이름의 어감은 '참으로 바보같다'는 우리나라의 어떤 단어와 비슷해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킥킥 웃었는데, 결국 이름값을 그대로 하고 떠나갔지 뭡니까.

그 친구는 에이전트를 통해서 우리집에 왔는데요, 나이도 25세로 어리고 무엇보다 얼굴이 무척 밝고, 웃는 게 너무 이쁜겁니다. 그리고 한 집에서 갓난아이 둘을 4년이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계약을 했는데, 그 친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 일주일은 정말 편했습니다.

제가 어느날 이 친구에게 너네 전 주인은 어땠어? 라고 물었습니다. 홍콩 주인이었는데 할머니하고 같이 살았다는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런 상황은 메이드들에게는 최악인거죠.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잔소리 하는 존재가 좁은 집에 그림자처럼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지는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할머니며 주인 아줌마며 아저씨며 자기한테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게 일이었다네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어리고 해맑게 웃는 소녀같은 아이에게 어떻게 매일같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까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힘들고 다친 마음, 우리집에서 잘 다스리다 가게 해야겠다고. 그런데 저의 그런 다짐에 마가 낀걸까요? 얼마 후부터 제가 그 친구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 겁니다. 아, 참고로 저는 누구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하는 성격은 절대 아닙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겁니다.

쌀이며 반찬 재료며 국거리 등을 지금 있는 그 상태로 잘 유지해야 한다며 일주일치 시장 볼 목돈을 주고, 돈 쓴 내역을 적으라 했지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 이 지나면서 냉장고가 점점 비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은 쌀이 동이 나서 제가 먹을 밥이 없다는 겁니다. 밥을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저는 정말이지 억울해서 살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인데 말이죠. 내가 준 돈 어딨냐고 물으니 자기가 쓸 데가 있어 썼다며 미안하다네요. 이 상황,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하는 수 없이 사야할 물건의 목록을 적으라 하고 그거에 해당하는 돈을 줬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반만 사고 반은 안사거나 엉뚱한 걸 사다놓는 겁니다. 그 역시 돈의 반은 자기가 쓰고. 아휴. 또 옥토퍼스 카드에 돈을 넣어주고 1달 동안 쓰라고 했는데 일요일에 나갔다 오더니 그 돈을 다 썼답니다. 온갖 데 돌아다니고 먹는 거 사먹으면서. 이건 완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닙니까? 이러니 제가 언성이 안 높아져요?

그뿐 아닙니다. 집안일 해놓으라고 시켜놓고 가면 90%는 까먹고 10%만 해놓는데 것도 영 엉터리인 겁니다. 남편의 명품 겨울 울 가디건을 물에다 빨아서 완전히 갓난아이 배내옷 만들어 놓질 않나, 제 흰 블라우스를 시커먼 옷과 빨아서 요즘 유행하는 표범무늬로 만들어 놓질 않나, 막내 아들이 학용품 살게 있다며 같이 가달라고 하면, 자긴 바쁘니 너 혼자 다녀오라고 하고. 한 번 슈퍼에 가면 2-3시간은 기본인거죠. 홍콩섬이나 다른 지역으로 심부름을 보내면 거의 하루는 잡아먹는다고 봐야 하구요. 몸은 죽어라고 안 씻어서 참으로 고얀 냄새가 꾸역꾸역 나고, 안티 방에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새어 나와 결국 대청소를 시켰습니다. 이건 도저히 제가 20년 홍콩에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안팁니다. 제 목소리가 이젠 두어 옥타브 더 높아지면서 혈압도 직상승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안티를 6개월 만에 과감하게 해고시킨 이유는 그런 자잘한 사건 말고 대 사건이 일어나서였습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제게 전화를 했다고 우기고, 저는 받은 적이 없어 그럼 전화기를 좀 보여줘라, 했더니 전화기에 하루 동안 걸고 받은 전화리스트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겁니다. 거의 2분마다 한 번씩 전화를 하고 있으니 집안일이고 살림이고 제대로 되겠습니까?

또 뭐더라? 아, 그거 맞아요. 그걸 빼먹으면 안 되죠. 우리 아이들이 쓸 돈 안 쓰고 정말이지 알뜰살뜰 모아둔 돼지저금통의 푼돈을 곶감 빼먹듯 쏙쏙 빼먹은 거에요.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옷 사고, 맛있는 거 먹고 전화비 충당하느라 우리 살림살이 비용을 날름날름 가져다 메꾼 거죠.

그리고 있잖아요, 더 웃긴 일은 뭔지 아세요? 어떤 남자가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 친구를 찾는데, 그 순한 양 같던 이 친구가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며칠 후 이 친구가 슈퍼를 간 사이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이건 우리집 전화니까 그 친구 핸드폰으로 직접 하라구요. 그 남자가 그럽디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안 받는다구요. 실은 그 친구가 자기한테 돈을 빌렸는데 안 갚는다는 겁니다. 얼마냐고 물었죠. 홍콩달러 25,000 이랍니다.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그래도 우리집에 자꾸 전화하지 말고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니까 갑자기 다짜고자 제게 욕설을 퍼부어대는 겁니다.

영어실력이 대단치는 않은 제가 어떤 지경의 욕설인지 파악된다면 얼마나 지독한 욕설인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그 다음부터 우리 집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해대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우리 안티에게 내일 당장 짐 싸들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티는 엉엉 울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여러 사정 봐줘서 그동안 잘 지낸거 너무 감사하다고, 자기의 큰 잘못 때문에 피해를 줘서 미안하답디다. 눈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내린다는 표현을 저는 이날 알았습니다. 자기관리 못해서 이 모양으로 사는 이 친구가 정말 한심해 화가 치밀기까지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이럽디다. 맘, 내가 잘못한 거 잘 아는데, 그거 아세요? 해고를 하면 2개월치 월급을 줘야 하고, 편도 항공편에, 공항까지 가는 교통비도 지급해 줘야 하는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돈을 주라고.

으악~~~~ 저는 저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기가 우리집 돈 해먹은 게 얼만데 도대체 그 돈을 달라고 하냔 말입니다. 줘야죠 줘요. 암요. 이런 일일수록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거죠. 다 줬습니다. 깨끗하게 몽땅요. 상 당한 사람처럼 엉엉 울던 이 친구요, 바로 맑은 햇살을 닮은 웃음을 활짝 짓는 겁니다.

으악~~~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이 상황, 그래서 종료했습니다. 과감하게. 잘했죠? 아, 지금 안티요? 어찌나 그 전 안티랑 지옥훈련을 했는지 지금 안티가 하는 말, 행동, 모습, 뭐든 다 천사에요 천사. 뭘 어찌한들 그 전 안티만 하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한 건데, 우리가 살면서 더 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그런 ^----^

Rosa Kwon (hongkongros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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