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남자와 결혼해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음식과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홍콩생활 8년 째에 접어들지만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수두룩하여 새로운 중국 레스토랑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오늘 이바구 할 내용은 산후 몸조리와 그 과정에서 먹는 음식에 관한 거다. 홍콩에서 아이 둘을 낳고 몸조리를 하면서 나는 왜 홍콩 산모들이 산후통이나 평생 허리나 손목, 발목이 아픈 것이 덜한지 알 것 같다. 이쯤에서, 홍콩에는 '아마'로 불리는 가정부가 살림을 도맡아 주어서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분들이 계실 줄도 알지만, 뭐 그것도 무시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주위 홍콩 친구들을 보면 "푸윳"이라고 하는 산후 몸조리 스페셜리스트를 한 달 동안 집안에 두고 그에 관한 토털케어를 받는다. - 팔자가 정말 좋다 - 그러나 참 재미있는 건, 유명한 "푸윳"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고 연예인 누구누구를 돌보았다던가 경험이 있다 싶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계약한 한 달이 무사히 끝나면 감사의 봉투, 라이씨도 줘야 한다.
나의 경우, 돈도 돈이거니와 가뜩이나 아이 낳고 입맛을 잃었는데 어떤 해괴한 음식을 들이댈까 두려워 친정어머니와 시집식구들에게 몸조리를 맡겼었다.
그런데 서양 사람과 결혼한 한 친구는 사립병원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정부병원에서 아이를 몇 씩이나 낳고는 그때마다 남편이 잔소리를 하든 말든 거금을 들여 홍콩 "푸윳"을 쓰면서 산후 조리와 식이요법을 병행하여 두어 달 만에 분만 전의 그 늘씬한 몸매로 돌아온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나 싶어 가족의 도움을 받은 나지만, 가끔 몸이 허하거나 기운이 없으면 산후조리를 푸윳한테 맡길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밤이고 낮이고 푸르죽죽한 미역국만 줄기차게 먹는 것을 보고 남편이 영 못마땅해 했다. 그걸 질려하지도 않고 매일같이 한 그릇씩 비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바다 물개 같다는 둥, 그래서 어떻게 기운이 나냐는 둥 놀림과 함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역이 출산과 동반한 몸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미역국만 고집하지만, 홍콩 중의에 의하면 미역과 같은 해초는 차가운 기질이 많기 때문에 몸을 차갑게 한단다.
남편과 홍콩이 아닌 제 3국에 살면서 첫째를 낳은 터라 몸 관리에 소홀했던 나는 둘째를 낳고서는 몸에 좋다는 것은 뭐가 됐든 두 눈 딱 감고 먹어댔다. 그 중 가장 내 몸을 보한 것이 있다면 홍콩 시어머니가 끓여서 배달해 준 '오골계 국물' 이다. 이를 물처럼 한 달 내내 마셨다. 이게 바로 '치킨 에센스'다. 치킨 에센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큰 솥에 작은 빈 밥그릇을 엎어서 중간에 놓고, 닭 껍질을 제거한 깨끗한 생닭을 밥그릇 위에 척 올려 (생강 한 조각과 함께) 2시간 정도 찌면, 엎어진 밥그릇 안에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닭 육수가 생긴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최상의 엑기스를 매일 한 그릇씩 꾸준히 먹어 기력을 회복했는데, 지금도 애들이 아프거나 남편의 기력이 쇠해졌다 싶으면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실한 놈으로 골라 닭부터 잡고 본다.
닭 엑기스와 함께 또 이 나라 사람들이 먹는 것은 밥과 잘게 채를 썬 생강을 같이 볶아서 만든 볶음밥이다. 홍콩에 있는 생강은 한국과 달라 들척하고 맛이 그다지 강하지가 않다. 이 생강을 먹어서 몸에 든 냉기와 바람을 빼준다.
또 생강물을 다려서 머리도 감고, 출산후 첫 2주까지 생강물로 목욕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홍콩 산모들은 붓기도 없고 모두들 날씬한가 싶기도 하다.
출산 후 꼭 먹어야 되는 음식이 또 있다. 바로 "주걱겅(Boiled Pork Knuckle and eggs with Dark Vinegar) ". 돼지 족발에 요즘 한국에서 붐이 일고 있는 흑초를 넣어 만든 건데, 먹물같은 흑초와 생강뿌리, 달걀 등을 넣고 오래도록 끓이는데, 나중에는 돼지 족발의 살이 다 녹아내려 완전 젤리처럼 된다. 돼지 족발에 있는 콜라겐은 입에 쩍쩍 붙고, 삶은 달걀의 속까지 흑초가 스며들어 흰자도 검다. 자궁수축과 여성의 모든 기관들을 활성화 시키고 입맛이 놀랍게도 빨리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걸 하루에 너무 많이 먹어서도 안 된다. 매일 달걀 하나와 돼지 족 한 편씩 먹는다. 얌차집이나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 요리를 보게 되는데 여자한테 정말 좋다니 한 번쯤 먹어 볼 것.
이제 산후조리 마무리 단계다. 소화기능이 돌아온 2주 후부터는 그 유명한 버드 네스트(Bird Nest:제비집)를 먹을 시기다. 한약방에서 파는 제비집에 설탕(Rock sugar)을 넣어 끓인 보양식이다. 그 실타래처럼 허연게 값어치도 없어 보이는 제비집을 몇천 불씩 줘가며 사다 먹는 홍콩 사람들을 보면 아직까지도 신기하기만 하다. 나 같으면 그 돈으로 금덩이라도 한 개 살 텐데 말이다.
홍콩 사람들은 이 제비집을 우리가 홍삼 복용하듯 꾸준히 복용하고, 심지어 페이셜에 가서도 제비집을 온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피부는 완전 도자기다.
피부 관리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가서 각종 요법을 시술받는데, 홍콩여성들은 음식섭취나 보양식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우리 시어머니도 매일 매일 마시는 중국 수프를 비타민보다 더 중요시 하는데, 파파 할머니가 돼서도 피부가 그렇게 뽀얗고 촉촉한걸 보면 그 효과가 뛰어나긴 한 것 같다.
홍콩에 오래 살다보니 중국스프(광동탕이라 일컫는)의 효능을 100% 신뢰하게 됐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게 된다. 몇 주 전에 친정어머니가 다기능의 전기밥솥까지 보내오셨으니 올해는 지난해 보다 더 열심히 수프를 끓여 먹어야겠다.
<제니퍼 김(hongkong5j@yahoo.com)>
ⓒ 위클리 홍콩(http://www.weeklyh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클리홍콩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