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한인여성회 & 위클리홍콩 주최 제3회 한글사랑 글짓기 공모전 대상作
선생님은 학교가 끝난 후 선생님과 같이 동호 어머니에게 찾아가자며 약속 시간을 잡아 주었다. 나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조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럴 때 마다 손가락질에, 장애인 아버지 이야기에, 모욕적인 말을 참기 힘들었지만 자녀들 공부시키며 아버지 병간호로 사는 어머니와 옆에 있는 선생님을 생각하며 견뎌 냈다. 선생님과 나는 매일 매일 동호 어머니를 찾아 갔다. 동호 어머니는 여전히 얼음처럼 냉랭했지만 선생님한테까지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선생님 이제 그만 찾아오셔도 되요. 아니 애 엄마는 뭘 하고 선생님이 직접 오세요? 쟤 혹시 집에서도 내 놓은 자식인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민수 어머니께서도 이번 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일을 하시기 때문에 오지 못하는 거구요, 저한테 직접 편지까지 보내셨어요. 여기, 읽어보세요.”
나는 깜짝 놀라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나 몰래 어머니를 만났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내가 일부러 동호의 바지에 오줌을 싸지 않았지만,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서 사과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정말 창피하고 죄송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기 일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모습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동호 어머니도 느끼셨는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며, 나에게 모든 것이 선생님 덕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 사건 이후 부쩍 나와 대화를 많이 시도했다. 특히 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것 같았다. 유치원 때는 무슨 색을 좋아 했는지, 어떤 그림을 잘 그렸는지,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 친구는 있었는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홍콩에서 가본 곳 중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어딘지 등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물어 보았다. 나는 그때마다 예전의 나를 머릿속에 떠 올리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하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며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되었다. 몇 년간 내가 정성스럽게 돌을 하나하나 올려 쌓아서 만든 나만의 성에 그 동안 없었던 문이 만들어져 있었고, 지금 그 문이 열려 있음을 말이다. 그 문으로 나는 세상과 소통을 하려고 했다.
선생님은 나를 지역아동센터에 데리고 갔다. 이곳은 기초생활자로 분류되어 나라에서 생활비를 수급 받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번 이곳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학생들의 숙제나 공부를 봐줬다. 그곳에는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꽤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초등학생 공부는 중학생 형, 누나들이 도와주고, 중학생 공부는 고등학생들이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은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꾸려졌다.
나는 그곳에서 그동안에 비해 적응을 잘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수학은 물론이고 공부하기 싫어했던 영어도 성적이 많이 올랐다. 국어를 따라 잡기가 힘들었지만, 담임선생님 과목이라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나아지지 않았던 가정 형편이었지만, 어머니에게 대학교 입학금을 도움을 받은 것 말고는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으로 학비를 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때 그 사건을 해결해 준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 갔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난다는 설렘에 볼이 찢어질 것 같은 추위도 견딜 수 있었다. 군고구마 장수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잘 익은 군고구마를 샀다. 선생님이 좋아하던 학교 앞 떡볶이와 오뎅도 포장을 했다. 어머니가 미리 약속을 잡아놓아서 선생님은 교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그래. 민수 왔구나? 밖이 많이 춥지? 어머니, 안녕하셨죠?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제가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사는 게 뭔지 일하느라 세월이 후딱 지나갔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민수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애 많이 쓰셨어요.”
“선생님, 저도 나름 훌륭하게 큰다고 애 많이 썼는데요?”
“아하하, 이제 민수가 이런 썰렁한 농담도 하니? 민수야, 선생님이 적응이 안 되는 걸?”
“하하하하!”
선생님과 나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 후 외국계 금융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아시아 본부가 홍콩에 있다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민수야. 많은 사람이 인생의 긴 여정을 걷고 있지. 끝이 어딘지 보이면, 끝나는 지점을 보고 갈 수 있으니 힘들지 않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힘들까?”
나는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조금 알겠다는 듯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그 긴 여정을 어떤 사람은 앞만 보고 가기도 하지만 뒤로 돌아서서 가기도 하지. 자신의 앞에 놓은 현실을 바라보기 힘들어서 뒤로 돌아섰지만 방향은 앞으로 걷는 거야. 그렇게 올바른 방향으로 걸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야.”
어머니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민수야. 예전에 선생님이 너를 봤을 때, 너는 뒤돌아서 걷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올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걷고 있는 거 같아서 선생님이 많이 기쁘고 마음이 뿌듯하다. 이제 우리 민수가 훌륭하게 자라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면서 살겠지? 혹시 살면서 네 주변에 뒤로 걷는 사람이 보인다면, 민수가 그 손을 잡아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함께 걷는 거야. 혼자가 아니고 함께 말이야. 어때 민수야 할 수 있겠니?”
나는 진심어린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 넣고 있다.
“어머, 죄송합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기체는 흔들리고 있었고,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던 승객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던 물을 내 바지에 쏟아 버렸다.
“앗 차가워.”
“어쩌나?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여자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손님, 지금 안전벨트 싸인 불이 켜져 있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안전하게 벨트를 매어 주십시오.”
승무원의 말에 물을 쏟았던 여자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휴지가 없어서 발밑에 있던 기내 담요로 아무렇게나 쓱쓱 닦아 냈다. 물을 흘리고 간 여자는 내 기분을 살피는 듯이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후 안전 밸트 싸인이 꺼졌다.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가 젓은 바지가 어떤지 확인해 보려는데, 그 여자가 따라 왔다.
“저기, 저기요. 아까는 너무 죄송했어요. 많이 놀라셨죠?”
“아니... 뭐, 그냥...”
“저기 초면에 죄송한데요. 혹시 홍콩 사세요?”
“아니요... 홍콩에 살지는 않아요. 왜 그러시는데요?”
“이상하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혹시 이름이 민수 아니에요? 갑자기 성이 생각이 안 나네? 김민수? 최민수?”
“윤민순데요.”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그래 윤민수! 맞지 너? 안녕, 반가워 오랜만이야. 나 몰라? 너랑 같은 학교 다니던 제시카야, 제시카. 이수진. 기억나?”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이수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시카라고 하니 기억이 날 듯 했다. 쾌활하고 시원시원하게 웃는 제시카는 내 옆에 사람에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잠시 자리를 바꿔 줄 수 있냐고 정중히 이야기를 했고, 흔쾌히 자리를 바꿔준 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빼 놓지 않았다. 내 옆에 자리에서 홍콩에 도착할 때 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제시카 때문에 나는 잠시 귀를 막고 싶었지만, 예전처럼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꼽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그렇지 많은지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제시카와 잠시 벽을 쌓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 했다. 제시카는 어쩌다가 자기가 내 바지에 물을 쏟았는지 참 우연이고 또 인연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가 10년 전 동호 바지에 오줌을 누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만났고 진심을 나누는 것은 따뜻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홍콩으로 출장을 떠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수진이가 어쩌면 10년 전의 나처럼 돌아서서 걷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만큼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아서서 걷는다는 것은 결코 혼자가 아닌 길이라는 것. 모두 다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함께 걷는 길이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 준다면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선생님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끝.
<한지수>
ⓒ 위클리 홍콩(http://www.weeklyh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클리홍콩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