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에서 발생한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가 일어나자 ‘천안문 사건’의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하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
홍콩에서 발생한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가 일어나자 ‘천안문 사건’의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하의 목소리가 나올 만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 당국은 강경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시위는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 배경에는 완전히 약체화 되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홍콩의 나약한 모습이 있었던 것.
홍콩의 주권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된지 올해로 17년째. 그러나 반환후도 홍콩은 중국 본토와는 달리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는 등 「한나라 2제도」와 고도의 자치를 부여받았다.
사실 홍콩은 영국 통치시대부터 자유 경제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정치의 민주화는 불충분한 상태로 놓여있었다.
이번 시위의 발단이 된 행정장관 선거의 경우, 기존에는 800명으로 이루어진 추천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뒤, 중앙인민정부에 의해 임명됐었다. 홍콩을 대표하는 행정부의 수반의 임기는 5년이고,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으며 자격은 40세 이상의 중국인으로 20년 이상 홍콩에 거주해야 하며, 외국에 거주권이 없는 홍콩 영주권자이어야 한다.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중앙정부와 특별행정구 사이에는 행정장관 선출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별행정구 내에서는 홍콩기본법이 50년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병존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장관 역시 특별구 시민들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중앙정부는 2004년 4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기본법을 재해석해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허용하면서 단,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홍콩에서 홍콩시민들이 민주적으로 직접 행정장관을 선출할 수 있는 2017년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올 8월 말, 북경의 전인대의 결정이 파문을 불렀다. 행정장관선거의 직접선거를 허용하는 대신, 친중국계 색이 강한 ‘지명위원회’의 추천을 얻은 사람만이 후보자가 되는 시스템이 채용된 것이다.
그 결과, 홍콩의 독립성을 빼앗긴 것 같은 결정에 학생들을 중심으로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9월 22일, 대학생과 중고생들이 시위를 개시, 28일부터는 민주화파와 함께 행정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에 홍콩경찰의 최루탄을 사용한 진압이나, 17세의 학생 리더 조슈아 웡(黃之鋒)에 대한 일시 체포 등 강경조치는 오히려 시위대 측에 기름을 부었다.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중국 국경절 연휴에는 학생과 젊은 사회인 등 30만 명이 번화가나 금융가에서 농성을 개시. 그 일부 지역의 점거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산혁명의 배경에는 단순한 민주화 요구뿐만 아니라 반환 후 17년간에 축적한 홍콩 젊은이들의 불만이 깔려있다. 중국 통치하의 홍콩의 ‘「참상’을 들여다 보자.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중국 경제에 대해 반환 후 홍콩의 성장은 보합세를 띠고 있다. 선진국 수준의 풍요로움을 과시하던 이전과는 달리 홍콩의 경제력은 이제 중국의 지방 도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확대(작년 수출의 55%, 수입의 48%가 중국) 돼 홍콩의 연간 여행객 5,400만 명 중 75%가 중국인이었고, 서비스업이 역내 GDP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홍콩 경제는 이제 곧 중국 빼고는 절대로 돌지 않은 상태가 된 것이다.
경제적인 지배를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은 홍콩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반환 당초는 전무에 가깝던 공산당의 정치 구호가 거리마다 넘쳐나게 됐고, 또 행정관이나 재판관등 요직도 「애국」 (= 친중) 인사로 채워졌다.
한편, 중국 자본에 의한 대량의 주식 취득이나 광고의 결과로 반 중국 보도는 『빈과일보(애플 데일리)』를 제외한 텔레비전이나 신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올 2월에는 홍콩일간지 명보(明報) 전 편집장이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시진핑(習近平)을 비판한 서적 편집자가 중국 내에서 구속되어 간행이 중지 되는 등, 언론의 자유는 풍전등화가 됐다.
2011년부터는 홍콩의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애국교육이 도입되었다(덧붙여서 우산혁명의 지도층 일부는, 이 애국 주의교육반대운동의 참가학생이다).
올 6월, 중국 국무원은 「홍콩의 자치는 완전한 자치는 없고, 중앙 정부가 준 지방사무의 관리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백서를 발표, 말 그대로 한나라 2제도의 형태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홍콩 정치·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홍콩정청에 의한 과도한 중국인 우대정책이나 대량의 중국인 이민 허용, 신계지역에 사증이 불필요한 중국인 주택가 건설계획 등이 대표적이다.
근년에는 늘어나는 중국인여행객이 아이에게 노상에서 배변을 시키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던져 버리면서 홍콩인과 언쟁을 벌이는 등의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정청은 “중국인이 경제발전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에 홍콩인은 인내하여야 한다”며 이를 묵인하는 상태.
또, 중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입이나 이민 증가로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연간 30% 이상 폭등하고 있다. 이 악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홍콩의 원주민들인 것이다.
홍콩의 한 대학생은 “화이트 칼라의 젊은이조차 내 집 구입은커녕 임대조차도 곤란하다. 결혼 후도 양친과의 동거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움직임까지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홍콩정부는 중국의 기색만 걱정하여 홍콩 주민을 살필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결국 자신들에게 미래가 있기나 한 것인지, 라는 불안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말했다.
이와 같이 학생의 데모 참가가 눈에 띄는 이유는, 젊은 세대가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중국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장 느끼기 쉬운 입장에 있는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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