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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잘 넘어지는 연습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8-02-13 11: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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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경기가 벌어지는 단 하루의 몇 분을 위해 싸우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타인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하라고..
“올림픽 경기가 벌어지는 단 하루의 몇 분을 위해 싸우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타인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경쟁하라고?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여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게 하는 건 아닌가.”

지난 9일 막을 올린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조준호 용인대 코치의 회고를 떠올렸습니다.

평창올림픽에는 90여 개국에서 29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조준호 코치는 6년전 런던올림픽 무대에서 좌절과 환희를 함께 맛봤습니다. 8강전에서 일본 선수와 겨루던 도중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고,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마냥 분통을 터뜨리고 좌절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패자부활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쪽 팔만 써야하는 악조건을 딛고 연승을 거둬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는 최근 쓴 책 《잘 넘어지는 연습》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한쪽 팔로 어떻게 경기를 하나 절망스러웠다. 그 순간 내게 떠오른 것은 이기는 법이 아닌 지는 법, 즉 낙법이었다.”

유도에는 다른 운동종목들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잘 넘어지는 방법’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유도선수들은 상대를 메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잘 넘어지는 연습부터 합니다.

“낙법을 제대로 익히면 다치지 않기 때문에 상대 공격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안 넘어지려고 기를 쓰는 대신 자신감을 갖고 경기를 운용할 수 있다. 나는 훈련 과정에서 수만 번 넘어졌다. 석연찮은 판정패를 당했을 때도 ‘그래, 한 번 넘어진 것일 뿐이다. 평소대로 낙법 잘하고 일어서면 된다’고 되뇌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넘어졌을 때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도에서는 낙법을 친 다음에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천천히 일어나 도복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잘 넘어지는 일’과 ‘잘 일어서는 일’ 사이에는 ‘그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넘어져서 입은 상처와 통증을 찬찬히 바라보는 여유다. 왜 넘어졌는지에 대한,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일어서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다.”

평창올림픽은 많은 선수들에게 승리의 환호가 아닌, 넘어지는 아픔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응원하는 선수와 똑같이 아쉬움과 속상함에 젖어드는 감정이입을 경험하는 팬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잘 넘어지는 법을 배워라. 억지로 버티는 대신 잘 넘어지는, 인생낙법이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이학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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