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6호, 3월16일]
"앞으로 100년 뒤 결혼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1926년 영국 시인 헬런 호프 밀리스가 저녁모임에서 물었..
[제166호, 3월16일]
"앞으로 100년 뒤 결혼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1926년 영국 시인 헬런 호프 밀리스가 저녁모임에서 물었다. 한 소설가는 "동거가 결혼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존중받는 남녀관계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다른 소설가는 "이혼이 쉬워져서 남 눈치 안 보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과학자는 "편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자녀 없는 결혼도 흔해질 것"이라고 했다.
▶80년 전 분방한 예측을 했던 그들이 오늘 결혼과 가족의 모습을 보면 기겁할 것이다. 유럽에서 태어나는 아이 셋에 하나는 동거 커플의 자녀다. 미국 미혼여성의 25%는 동거 중이다. 프랑스에선 가구 셋 중 하나가 독신가구다. 미국에선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주(州)가 생겨났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동거 커플에게 정식 결혼 부부와 똑같은 법적 지위와 혜택을 준다.
▶앞으론 어찌 될까. 미래학자 파비엔 구-보디망은 "평균수명이 100세 넘는 시대엔 보통사람들도 두어 차례씩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가족'이란 자신이 속한 여러 가정 가운데 하나를 의미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동시에 여러 가정에 소속되고 아이들은 동시에 여러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 사라지기보다 급변할 것이라는 예측들이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초·중·고 학생들을 조사해보니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답이 여학생 10.4%, 남학생 22.8%밖에 안 됐다. 여학생의 9.8%, 남학생의 5.8%는 아예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 세대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까지 부정적일 줄은 몰랐다. 이러다간 우리에게 '결혼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닥쳐올지 모르겠다.
▶요즘 프랑스에선 청혼할 때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하늘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살겠다"는 맹세는 부담스러워서 차마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안정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 청소년들이 결혼과 출산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그들이 자라며 보아 온 가족과 사회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짐들을 나라와 사회가 차근차근 덜어주지 못한다면 50년, 100년 뒤 한국의 결혼과 가족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모습이 될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 강인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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