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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99) - 오늘은 무슨 데이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3-15 15: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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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6호, 3월16일] 삼치 아니면 참치      3월의 첫 토요일 외출에서 돌아오는 저희 부부에게 아파트 경비원..
[제166호, 3월16일]

삼치 아니면 참치
  
  3월의 첫 토요일 외출에서 돌아오는 저희 부부에게 아파트 경비원이 말했습니다.  "오늘 삼겹살 많이들 드셨어요?" "네? 삼겹살이요?" 반사적으로 대꾸를 하면서도 혹시 그가 아는 사람이 바로 뒤에 서있나 슬쩍 돌아다보았습니다.  "한국에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모르실 수도 있겠구나! 여기서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라고 해서 돼지고기 먹는 날이거든요.  오늘 같은 날은 이름에 '삼'자만 들어가도 제육덮밥을 덤으로 주는 중국집이 있다니까요.  그럼 오늘은 모르셨다니까 할 수 없고요, 7일날 참치회라도 많이 드세요."  "참치는 그날 왜요?" "글쎄요…3월 7일이니까 그냥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가 보죠 뭐.  가만있자, 그게 참치가 아니라 삼치를 먹는 날인가??"

  경비원의 말을 듣고 보니 지난 1월 '다이어리 데이' 선물로 받았다며 보라색 수첩을 보여주던 한 여대생이 떠올랐습니다.  2월 내내 술렁이던 밸런타인데이의 바통을 받아 화이트데이로 새 단장한 상점가를 지나며 무슨 날들이 이리 많을까, 하던 차에 뒤늦게 알게 된 삼겹살데이와 참치데이.  나중에 알아보니 매월 14일은 무슨 데이로 아예 지정이 돼있었습니다.  4월 14일은 솔로들이 모여 위로의 자장면을 먹는다는 블랙데이, 5월 14일은 연인끼리 장미꽃을 주고받는 로즈데이, 6월 14일은 14일에 만난 연인들이 입맞춤하는 키스데이, 7월 14일은 실버데이, 8월은 그린데이, 9월엔 뮤직데이, 가을무드 짙은 10월 14일엔 와인데이, 11월엔 오렌지데이, 엄동설한 12월엔 연인처럼 꼭 껴안는 허그데이까지! 잠시 고국을 비운 사이 우후죽순 생겨난 데이의 다양함에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데이(Day)문화가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과 젊은층의 소비를 부추겨 상업화의 길로 빠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케이블 채널에서는 보다 바람직한 데이문화에 대한 어린이들의 토론회를 주최해 방송했습니다.  서양의 데이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우리의 전통을 살린 데이를 만들어 즐기자든가 정성을 들여 손수 만든 선물이나 편지를 주고받자는 참신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초콜릿이나 쿠키를 사서 주는 대신 전통한과나 엿을 친구들과 나눠먹자는 한 어린이의 제안에는 '그렇지!'하는 탄성과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배려해 그날 하루만은 선물을 사서 주고 받는 행동 자체를 삼가자는 제법 의젓한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이벤트 VS 의미

  2007년 현재 우리나라 3인가구 수보다 많다는 2인가구 '무(無)자녀 맞벌이' 딩크족 (Double Income No Kids) A양은 주말부부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금요일 밤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어느 목요일 아침 A는 별안간 회사에 비상이 생겨 그날 당장 일본 출장을 가게 됐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 출장이 열흘이나 걸린다구요? 밸런타인데이도 데이트는 커녕 사탕 한 알 못 얻어먹고 넘겼는데 결혼기념일까지 나 혼자라니! 다른 여자들은 결혼 10주년이면 다이아니 뭐니 별걸 다 받는다는데, 나는 반지는 고사하고 남편한테 바람이나 맞는 신세라니. 무자식 상팔자니까 둘이서 자유를 즐기며 살자던 때는 언제고… 어휴, 이럴 때 내가 싱글이면 놀아줄 친구라도 많아서 좋으련만."

  특별한 날만 되면 괜히 마음이 들뜨는 A처럼, 다른 이들도 저마다의 기대 속에 데이의 아침을 맞는가  봅니다.  건축사무실에 다니는 20대 싱글녀이자 회사의 홍일점인 K는, 지난 2월 14일 초콜릿을 달라고 조르는 남자직원(유부남 포함)들에게 초콜릿 두 박스를 사다준 후에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떤 30대 남성도 자신의 씁쓸한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글쎄 작년 10월 중순경에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거든요.  늘 밥을 두 공기씩 시켜 먹는 그녀가 시종일관 밥알을 세고 있길래 입맛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절 노려보며 그러는 거예요.  '밥 먹는 게 무슨 이벤트 축에나 껴? 평생 신물나게 먹을 거…' 그러고는 만사가 귀찮다는 식으로 집에 가버렸어요.  다음날 사무실에 가서야 그날이 '와인데이'였다는 걸 알게 됐죠.  내 참, 30이 넘은 여자가 그깟 와인 한 병 때문에 저녁내 퉁퉁 부어있었다니 그게 말이 되냐구요…"

  1년 365일 안에는 이미 50여개나 되는 데이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개인의 대소사와 달력상의 공휴일까지 합하면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무슨 날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걸 다 치러낼 수 있는 기력과 재력을 겸비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는 몰라도, 이러다간 사는 게 너무 피곤해지지 않을까 걱정부터 됩니다. 어쩌다 깜빡 잊고 지나는 데이도 한둘이 아닐 테고 너무 잦아진 약속과 모임 탓에 겨우겨우 선물만 보내고 몸사리며(?) 쉬는 경우도 생길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래도 양보다는 질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특별한 날을 지정하여 즐기는 일이 친밀과 우애를 다지는 모처럼의 기회로 쓰인다면 찬성이지만, 선물과 이벤트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집착한 나머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소모적인 날이 될 바에야 우리 주변에서 과감히 정리해고 돼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라이프 코치 이한미 ICC C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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