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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 6편(잡초와의 싸움)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4-19 13: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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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0호, 4월20일]   시골 사람들은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뜨기 전 시원할 ..
[제170호, 4월20일]

  시골 사람들은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뜨기 전 시원할 때 밭에 나가 일을 하고 10시경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가 오후 4시경 다시 밭으로 가서 일을 합니다.  그래야 무시무시한 더위를 피해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빼미 스타일인 저는 평소에는 출근하느라 밭일을 못하다가 모처럼 토요일 저녁 늦게까지 영화를 보고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그제야 밭에 가서 일을 하니 일을 얼마 하지 않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쉽게 지치고 마는 것입니다.  딴에는 일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생산성은 빵점입니다.

  성질 급한 아내가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 속이 터지지 않겠어요?  제가 생각해도 속이 터질 판인데...  으이그~ 저 놈의 인간 하는 꼴 좀 보소.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밤늦도록 영화 보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 여름만 되면 아내와 매일 말다툼을 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힘이 들어서 제초제를 뿌리자고 하면 제가 반대를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해를 하면서도 도무지 힘이 들어 풀을 관리하지 못하겠으니 당신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밭의 빈곳에다가 몽땅 비닐을 덮어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어느 정도 풀의 공격을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마당까지 문제입니다.  시멘트 포장이나 자갈을 깔아서 풀이 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자니 땅의 기운을 막는 것 같아 잔디를 심기로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이러하니 농사에는 도무지 도움이 안 됩니다.

  잔디...  좋기는 하지만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마당에는 잔디를 심어서 어느 정도 풀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담벼락에는 담을 대신하여 사철나무를 심었는데 봄이 되면 나무를 전지하는 일도 장난이 아닙니다.  무겁고 큰 전지용 가위를 들고 사다리에 올라 가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루 종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중에는 아예 팔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거기다 잔디도 이발을 해 줘야하고, 감나무도 긁어야 하고...
으윽~  일... 일... 일... 정말 일이 많습니다.


불이야~~~ 불!!
  어느 해 봄 이었습니다.  잔디 이발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서 불을 질러 잔디를 태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혹시 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미리 양동이에 물을 떠 놓고 조심스럽게 잔디에 불을 놓았습니다.

  아이구! 어머니!  세상에 불길이 그렇게 빨리 번지는 것 처음 보았습니다.  불을 놓자마자 갑자기 마당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는데 놀라서 방방 뛰면서 저절로 불이야! 불이야! 하는 고함이 튀어 나오더군요.  영화 보면 불이 났을 때 사람들이 팔을 위, 아래로 들었다 놓았다 박수를 치면서 불이야! 불이야! 하고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방방 뛰기만 하며 고함지르는 장면 많이 보셨죠?  제가 바로 딱! 그 꼴이 났었습니다.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더라구요.

  방에 있던 아들과 아내가 놀라서 튀어 나오고...  마침 준비해 두었던 양동이의 물을 뿌리고 수건을 휘둘러 불을 끄고...  미친놈처럼 허둥대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불을 끄기는 껐는데 얼굴은 불에 그을린 아궁이마냥 시커먼 그을음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요.  아하! 이래서 산불이 나는구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온갖 정성을 들여서 애지중지 키운 나무 몇 그루가 산화했습니다.

  "당신! 정신 나갔어요?"  나무라는 아내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저도 모르게 그저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습니다.

  아! 정말 힘든 곳이구나.  시골이라는 곳이...


공병우식 타자기를 아십니까?
  아내와는 군 복무 중에 만나 5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 공직에서 타이피스트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습니다.  요즘에야 워드로 글을 써서 프린트로 출력하면 되지만 아내가 타이피스트로 근무할 당시에는 지금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많이 사용하던 타자기는 공병우식 타자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타자기 다음에 나온 것이 통일 타자기였습니다.  앞의 타자기를 공타, 뒤의 타자기를 통타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공병우식 타자기는 중성이 공용입니다.  예를 들어 "강"과 "가"를 타자할 때 공통으로 들어있는 모음 "아"가 자판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강"과 "가"의 모음부분 "아"를 같은 자판을 사용하여 타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만든 문서를 보면 "강" 글자의 "아" 부분이 길게 뻗은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이문세의 얼굴처럼.  그에 비하여 통일 타자기는 중성을 분리하여 받침이 없는 중성은 길게, 받침이 있는 중성은 짧게 타자되도록 분리해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타자기를 사용하여 여러 장의 문서를 만들 때는 종이와 종이 사이에 먹지를 끼워 넣어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어떨 때는 5장의 종이와 4장의 먹지를 포함하여 총9장의 종이를 끼워 넣고 타자를 쳐서 문서를 만든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보통 때보다 자판을 강하게 두들겨야 마지막 종이까지 글자가 타자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듭니다.

  아내는 이런 일을 많이 하다보니까 그 후유증으로 허리 디스크를 앓게 되었는데 지금이야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하는 기술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도 통증이 너무 심하여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아직 미혼인 몸으로 허리 수술을 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겠습니까?  거기다 수술 당일은 제가 바빠서 가지 못하고 며칠 있다가 병원에 갔더니 아내가 나를 보고 왜 수술하는 날 오지 않았느냐, 섭섭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면서 펑펑 우는데 참 난감했습니다.

  아내의 생각으로는,  "이제 허리 수술을 하였으니 아이 낳는 것도 힘들 것이고, 힘을 쓰지 못하니 살림살이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이 환하니까 이 인간이 벌써 눈치 채고 나타나지 않는구나! 불쌍하다 내 신세야!" 라고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는데 며칠 후 낯짝 보니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밉기도 하여 울지 않았을까?  제 나름대로의 냉철한 눈으로 분석한 것인데 맞습니까?

  하지만 우선 가불한 책임도 있고요...  그 무엇보다도 저를 가장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디스크 수술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어려운 점은 결혼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고 아내에게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살림도 잘했고 아들도 낳았습니다.  지금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는 태생적으로 손발이 차가운 체질입니다.  특히 추위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시골로 이사 와서 살아보니 이런 체질도 많이 변하더군요.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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