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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와 함께 떠나는 백두산 고구려 역사탐방 - 여덟 번째 이야기. 백두산에 서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9-06 16: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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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8호, 9월7일]   산악용 짚차는 6명의 정원을 태우고 드디어 백두산 정상으로 활주를 시작했다.    &nb..
[제188호, 9월7일]

  산악용 짚차는 6명의 정원을 태우고 드디어 백두산 정상으로 활주를 시작했다.
  
  백두산 정상이 점점 가까워 짐에 따라 두근대는 우리 마음을 아는지 짚차는 가파른 백두산 언덕을 시속 60킬로로 날듯 달리는데 몸이 짐짝처럼 이리저리 휘둘려 문이라도 열리면 수만 길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겠다 싶은 공포감에 잘 매여진 안전벨트를 몇 번을 확인했다.  

  차가 정상을 향해 가면 갈수록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고 우리 마음속에도 점점 안개가 짙어져 갔다.

  20여분 만에 도착한 정상의 언덕배기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어 3-4미터 앞에 있는 사람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10여분을 걸어 언덕배기를 넘으면 천지가 발 아래로 놓인다.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언덕 너머로 옮겼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백두산 천지는 짙은 안개로 제 모습을 휘휘감은 채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운무가 감도는 장엄한 영봉들과 웅혼한 기상을 머금은 천지 그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깊디깊은 바람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져 오는 걸 느꼈다.

  백두산 정상을 표시해 둔 비석을 바라보며, 가까운 지척에 두고서 그것도 남의 나라를 통하여 몇 천리 길을 돌아서 와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퍼졌다.  


나 강남살아요
  백두산 정상에서 다시 짚차를 타고 하산을 해야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발아래서 뒹구는 작은 돌들을 주섬주섬 주어 주머니에 넣고 짚차에 올라탔다.  정원이 차야만 떠나는 짚차는 50대 중반의 한 아줌마를 더 태우고 나서야 산 아래로 질주했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백두산정상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어 '동해물과 백두산이~마르고 닳도록~' 하며 애국가를 읊조리고 있는데 이 아줌마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어디 사세요?"

  아니, 이 백두산 정상에까지 와서 어디에 사는 게 왜 궁금할까, 지금 우리들 가슴으로 느끼는 이 벅찬 감동을 나누기에도 부족하지 않은가, 얼토당토않은 호구조사가 못마땅해져서 아이들에게 어디 사는지 말씀드리라고 했다.

  아이들이 "우리 홍콩 살아요"하자, 이 아줌마 하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홍콩? 어어 그렇구나.  그런데 너네 홍콩서 살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데?"

  할머니의 집 주소지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우물쭈물 거리고 있어 내가 "수유리에 살았어요"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이 아줌마 목소리가 한 옥타브나 높아지더니, 우리 아이들을 향해 "음, 그렇구나, 이 아줌마는 강남에 살아, 너네 강남 아니?  우리는 강남 ㅇㅇㅇ 교회 왔단다."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해 하는 꼴이라니..

  아이들이야 그게 무슨 소린지 알 턱이 없으니 말이 없었지만 나는 기가 막혀서 턱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혹은 한국의 암울한 교육현실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강남, 강북이 갈린 다더니 이 아줌마가 바로 그 짝이 아닌가.  말 한 마디 붙일 가치조차 없는 이 저급스러운 인종을 견뎌내는 20분이 내 생애 두 번째로 길었던 시간이 됐다.


비룡폭포 줄기 아래서
  그 아줌마가 일행을 찾아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떨며 달려가는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며 나는 우리 일행을 따라 장백 폭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폭포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듬성듬성 서 있는 침엽수와 하늘거리며 수줍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싸늘하고 청정한 백두산의 공기는 숨을 들이쉴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 들어와 공해로 오염됐던 내 육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40여분 걸어 올라가니 우람한 폭포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엄한 장백폭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장백 폭포는 원래 우리말로 '비룡폭포'인데 저들이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면서 비룡폭포도 장백 폭포로 바꿔서 부르고 있었다.

  폭포아래 흐르는 계곡 물에 손을 담그니 뼛속까지 시렸다.  

  장백 폭포를 옆에 끼고 40여분을 걸어 올라가면 백두산 천지 수면가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었다.  그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챙기며 위세를 부리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자 부아가 치밀었다.

  가족들을 이끌고 그 곳에서부터 걸어서 20여분 내려오니 길 옆으로 흐르는 유황 노천 온천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손을 대보니 뜨거워서 못 담글 정도였다.  길 한쪽에서는 중국인들이 온천수에 달걀과 옥수수, 소시지 등을 넣고 온천수에서 익혔다며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우리가족 4명과 Jay 가족 4명, 총 8명이 2개씩 먹을 유황계란을 16개를 샀다.  계란 하나씩을 들고 까지지 않는 껍데기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내 아들 진호는 계란 8개를 후다닥 먹어치웠다.  이 기적 같은 일에 Jay는 자기가 본 놈 중 가장 쎈 놈,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글 : 로사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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