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9호, 9월14일]
벽난로를 만들고 나니 장작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우선 봄에 전지를 하고 남은 ..
[제189호, 9월14일]
벽난로를 만들고 나니 장작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우선 봄에 전지를 하고 남은 나무 가지가 어느 정도 있고 근처 언덕에서 잘라 온 나무가 조금 확보되어 있었지만 겨울동안 땔 나무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나무를 확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 길옆에 방치되어 있는 나무둥치만 보이면 "저걸 가져가면 10일은 때겠는데..."
그러다가 최고로 기쁜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친구 회사에서 일본으로부터 기계를 수입했는데 이 기계포장을 분해하고 나니 나무가 엄청 나와서 친구가 저더러 나무를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얼씨구나 하면서 벽난로를 만들어 준 회사의 화물차를 빌려 즉시 친구회사로 갔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수입한 기계의 길이가 10m나 되는 큰 기계다 보니 포장한 나무 크기도 가로 세로 각각 20cm나 되는 큰 기둥에 길이가 짧은 놈이 5m 정도로 큰 놈들이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무를 보는 순간 욕심은 무지무지하게 났지만 이렇게 큰 나무를 무슨 수로 가져가나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친구가 왔습니다. "나무 안 싣고 뭐 하냐?" "야! 이 작은 차에 무슨 수로 이 큰 나무를 싣겠냐?" "그 놈 돌대가리네! 톱으로 자르면 되지!" "톱으로? 이 많은 나무를 톱으로 어느 세월에 자르냐?" "손으로 자른다고? 머리 나쁜 놈 표 내네. 엔진 톱으로 자르면 되지" "엔진 톱? 아하! 그래! 바로 그거야!"
그리하여 엔진 톱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굉음을 내면서 수 십 미터의 나무를 자르던 엔진 톱을 졸지에 제가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엔진 톱을 사려고 알아보니 크기나 성능 면에서 일본제가 좋았고, 엔진 톱으로 할 것인지 전기톱으로 할 것인지 망설이다가 나중에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이동이 용이한 엔진 톱이 좋을 것 같아 290,000원을 주고 엔진 톱을 구입했습니다.
휘발유에 오토바이 엔진오일을 섞어서 엔진 오일 통에 주입하고 발로 엔진 톱을 누른 후 시동 줄을 빠르게 잡아당기면 큰 소리를 내면서 엔진이 돌아가는데 왼손으로 엔진 톱 중앙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에 부착된 핸들을 오른손으로 잡은 후 오른 쪽 손가락으로 클러치 레버를 누르면 톱날이 고속으로 돌아가면서 나무가 잘립니다.
처음 나무를 자르다가 10분도 안되어 중지했습니다. 아직 숙달되지 않아 무게와 진동 때문에 허리의 퉁증도 심할뿐더러 팔에 감각이 점점 없어지는데다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날이 몸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문득 예전에 본 시카고 톱날 살인사건이란 영화가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나무 자르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차에 싣기 가능한 길이로 나무를 잘라 차에 가득 싣고 집으로 왔습니다. 굵직한 기둥으로 써도 괜찮을 나무를 잔뜩 싣고 오는 것을 본 동네 아주머니 왈 "또 집 지을라꼬?" "아닙니다. 벽난로 장작으로 쓸려고요" "이렇게 좋은 나무를 장작으로?... 쯧쯧쯧" 집안 곳곳에 쌓아 놓고 보니 대형기계를 포장했던 규모라 상당한 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엔진 톱으로 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잘랐습니다. 엔진 톱으로 작업 하는 것. 난생 처음 해 보았지만 이거 진짜 장난 아닙니다. 연속으로 10분 동안 계속 작업하기 어렵습니다.
무거운 톱의 무게 때문에 허리는 빠지는 것 같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톱날의 진동으로 온몸이 덜덜덜 떨리는데 나중에는 톱을 놓아도 손과 어깨가 5분 이상 저절로 덜덜덜 떨려서 물 컵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몸이 덜덜덜 떨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엔진 톱은 체구가 작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작업도구가 아닐까요? 어쨌든 그렇게 얻어 온 나무를 가지고 3년간 벽난로를 지폈습니다.
벽난로는 굉장히 추운 날씨에는 큰 도움이 안 됩니다.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가 가장 좋고 겨울에는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래도 사용하면 좋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을 때는 비가 오는 날입니다. 비가 와서 습기 때문에 집 안팎이 칙칙할 때 벽난로를 피우면 나무 타는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따뜻한 기운에 집안이 곱
슬곱슬하게 되면서 아늑해지는데 여기다 내리는 비 소리까지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급스럽게 되더라구요. 이때 이웃 사람들을 초청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벽난로 근처에 모여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조용하게 틀어놓고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삶의 의미를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이웃 부부를 초청하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집으로" 영화에서 비오는 장면이 있는데 스피커에서 나오는 비 소리와 창 밖에서 나는 비 소리가 겹쳐 들렸을 때 부인이 하는 말 "이 소리가 지금 밖에서 나는 비 소립니까? 여기서 들리는 비 소립니까?”
아내와 학원에서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들을 초청하여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벽난로 옆에 모여 앉아 따끈한 차를 마시면서 디바와 이글스 라이브 공연을 보았습니다. "저 가수 노래 정말 잘 부른다. 이름이 뭐랬죠?" "셀린 디온"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지?" "아! 음식도 맛있고, 벽난로 냄새도 좋고, 화면도 크고, 소리도 너무 좋다!”
시골사람들은 오디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가끔 우리 집에 와서 탄노이 스피커를 보고 하는 말 "이기 뭐꼬? 장농이가?" 그리고 디바 라이브나 이글스 라이브를 보여주면 "아이고! 시끄러버 정신이 없대이... 새댁! 한국가수 테잎은 없나?"
비오는 날 커다란 나무 2개 정도를 화덕에 넣은 후 잠이 들면 밤새도록 집안이 따뜻한데 나무 타는 냄새가 좋아 누워서 자꾸만 코를 벌렁거립니다. 그리고 우리 집 벽난로에는 특석이 있는데 오디오가 놓인 방향의 벽난로 면에 원목으로 의자를 만들어 놓았고 이 의자에 앉으면 벽난로의 따끈한 면이 등에 닿아서 등이 시원해지는데 말 그대로 앉아서 등을 지지는 곳입니다.
"아! 뜨끈뜨끈하네! 좋다! 여보! 장작 더 넣으세요" 이곳이 전남 여수 출신으로 자칭 전라도 전통 음식의 권위자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아내의 전용 좌석입니다.
제가 8살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무지하게 가난한 때였으니 국민들의 삶이 어떠했을 지는 대략 짐작이 갈 것입니다. 당시 저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가신다고 밀항선을 타고 가시다가 그만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수용소에서 일본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무능한 남편대신 아무런 도움 없이 2남 2녀를 책임지고 있던 어머니 홀로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이제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의 무게를 몸으로 느껴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힘겨운 세월을 보내 던 어느 날. 하루는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고 제가 남동생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칭얼거리는 동생을 달랜다고 업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동생을 업고 왔다 갔다 하던 곳은 무너진 집터였고 당시 동네 아이들이 그 곳에서 부서진 벽돌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놀이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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