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9호, 9월14일]
요즘 부쩍 중국의 대학과 기업체는 물론 정계와 군부를 사로잡는 고전(古典)이 하나 있다.  ..
[제189호, 9월14일]
요즘 부쩍 중국의 대학과 기업체는 물론 정계와 군부를 사로잡는 고전(古典)이 하나 있다. 2500여년 전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인 손무(孫武)가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를 위해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이다.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푸단(復旦)대 같은 명문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최고경영자(CEO)들을 고객으로 한 국학반(國學班)에 '손자병법과 기업전략' 등을 필수 코스로 개설, 운영 중이다.
인민해방군은 군사과학원에서 펴낸 '손자병법'을 모든 장교들의 훈련 교재로 정식 채택했으며, 올 들어 중국에 연수하는 외국 군대 간부들을 대상으로 손자병법 강의도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아예 손자병법 '세계화'에 나섰다. 손무의 탄생 2518주년을 맞아 지난 5월 고향인 쑤저우(蘇州)에 '손무서원(孫武書院)'을 연 게 신호탄이다. 당시 행사에는 홍콩·대만·일본·미국·이란·말레이시아 등 10여개국 손자병법 전문가 150여명이 참석했다. 손무서원측은 인터넷에서 관료, 기업 경영자, 대학원생 등을 상대로 한 손자병법 전문 강의도 실시할 예정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국가 지도자들이 손자병법의 원리를 국내외 정치 무대에서 직접 실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일 호주 시드니에서 폐막한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미국·일본·호주 3개국 정상이 사상 첫 안보전략회의를 열어 '대중(對中) 포위망' 구축을 노골화했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끝까지 단 한마디 비난이나 우려하는 언사를 쓰지 않았다. 대신 3각 동맹의 한 축인 호주로부터 매년 미국과 같은 수준의 '안보전략대화' 개최와 향후 20년 동안 100만t의 천연가스 공급을 약속 받는 '실리'를 챙겼다.
국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섭정 파워'에 밀려 줄곧 수세에 몰렸던 후 주석은 싸움이나 충돌 대신 은인자중 속에 세력을 확장, '친정(親政) 체제'를 굳히고 있다. 2002년 당 총서기 취임 이후에도 자신의 경호실장(중앙경위국장) 자리를 만10년째 맡아오던 장 전 주석의 최측근 심복인 여우시구이(由喜貴·68) 상장을 최근 소리소문 없이 갈아치운 게 그 결정판이다.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는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3편 모공·謀功편)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 주석은 작년 5월 조지 부시(Bush) 미국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게 '손자병법'을 선물, 이 책을 애지중지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려보면 어떤가. 참여정부 출범 후 시작된 '언론과의 전쟁'은 5년이 다 되도록 끝날 줄 모르고, 자주(自主)를 빌미로 한 미국·일본 등과의 삐걱거림도 여전하다. 급기야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검찰에 고소, 유례없는 임기 말 '야당과의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손무는 '최고 병법은 적의 의도를 미리 꺾는 것이요, 최하의 병법은 적의 성을 직접 공격하는 것(上兵伐謀, 其下攻城)'이라고 했다. 우리는 언제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게, 손무조차 감탄할 수 있는 선진형 리더를 가질 수 있을까?
<송의달 홍콩특파원 ed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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