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26편(이마의 상처와 의사 선생님 그리고 어머니)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9-20 17:40:53
기사수정
  • [제190호, 9월21일]   동생을 업고 부서진 벽돌 위를 이리저리 건너다가 제가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는데 동생을 업은 상태로 두..
[제190호, 9월21일]

  동생을 업고 부서진 벽돌 위를 이리저리 건너다가 제가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는데 동생을 업은 상태로 두 손을 뒤로한 채 아무런 저항 없이 앞으로 고꾸라졌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먼저 땅에 닿았는데 그곳에는 부서진 벽돌더미가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눈앞에 섬광 같은 것이 번쩍이더니 잠시 동안 제가 정신을 놓아 버렸던 것 같습니다.

  업혀있던 동생은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형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덩달아 넘어졌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동생이 울고 있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근심어린 표정의 얼굴들이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제가 눈을 뜨니까 그제야 저에게 말을 했는데 그 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귓속에서 웽웽거리면서 들렸습니다.  동생에게 울음을 그치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생각뿐이었고 말이 입안에서 맴돌면서 바깥으로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저를 일으켜 세웠고 그리고 어떤 아주머니가 제 이마를 한 손으로 꼭 누르고 있으면서 다른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보소! 빨리 된장 좀 가져오소!"

  어떤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된장처럼 보이는 것을 한 주먹 가지고 뛰어왔고 손으로 제 이마를 누르고 있던 아주머니가 그 된장을 받아 재빠르게 손을 바꾸면서된장을 제 이마에 척 붙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가자"

  그렇게 하여 아주머니가 된장을 손으로 누른 상태로 저를 데리고 동네 입구에 있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지금에야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시설이 현대화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그것도 동네에 있던 작은 병원이니 시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왁자지껄 하면서 아줌마들과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이 한 분 앉아 계셨습니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저를 눕혔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상처를 덮고 있는 된장을 들어내고 상처를 보더니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랍니다.  왼쪽 눈 위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선에 생긴 상처 모양은 U자 반대 모양으로 찢어진 길이가 약 10cm정도 되었으며 살점이 깨진 벽돌의 균열부에 끼어 밑으로 축 쳐져 있어서 머리뼈가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상처 소독이 시작되었는데 저를 데리고 갔던 동네 아주머니가 임시 간호사가 되어 저의 팔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꽉 잡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취제가 없어서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처를 뒤집어 그 속에 있던 벽돌 잔해를 씻어내는 소독치료를 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감각이 없어서 제가 다친 것조차 몰랐지만 병원 침대위에서 의사가 덜렁덜렁하는 상처 부위를 뒤집고 그 위에 수산화나트륨을 부어 탈지면으로 마구 씻어댔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그렇게 소독을 끝내고 여러 가지 약물을 바른 뒤 상처부위를 꿰매는 데 소독할 때 아파서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거의 실신상태에서 정작 맨살의 상처를 40바늘이나 꿰맬 때는 그냥 따끔거릴 뿐 별다른 고통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붕대로 제 머리를 칭칭 감았는데 혼자서 걸음을 걷지 못해 동네 아주머니가 저를 업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방에 누워있으니 머리통이 평소보다 서너 배 커진 것 같았고 이마에 수박만한 혹이 하나 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나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는데 지금이야 휴대폰을 때리면 금방 연락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직접 어머니가 일하는 곳으로 뛰어가서 이 사실을 알렸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어머니가 헐레벌떡 집으로 오셨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그때 일을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그 사고 때 제 눈앞에 있던 벽돌 조각의 모양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저에게는 대단히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니가 저의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집으로 오시는 동안 느꼈을 절망감과 가난함에 대한 비애, 그리고 자식을 향한 책임감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생각을 하니 제 자식에 대해 부모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의사 선생님이 혹시 밤중에 아이가 놀라거나 심하게 아프다고 하면 데리고 오라고 하셨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매일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사고가 생겼을 때 빠른 시간에 동네 아주머니가 상처에 된장을 발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의사 선생님이 명의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상처는 점점 아물어 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어머니가 일을 해서 5식구가 근근이 먹고 살기도 빠듯한 상태에서 제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힘이 들어 병원에 밀린 돈이 많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저하고 어머니가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매일 치료를 잘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면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이랬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고 돈이 생기면 갚으세요.  그리고 이 녀석의 상처는 흉터 생기지 않도록 제가 깨끗이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제 왼쪽 이마에는 그때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훌륭하신 의사 선생님이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선생님 말씀대로 저의 흉터가 깨끗이 없어졌을 지도 모르고 미처 갚지 못한 병원비를 다 갚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이야기는 저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내용입니다.

  의사선생님은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동네인구도 얼마 되지 않아서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모두 알고 지내던 시절이라 동네 입구에 있던 병원주인의 사생활이 동네사람들의 주요 화제 거리가 되었더랍니다.

  어느 날 부부싸움을 하던 중 의사선생님이 약병을 들고 부인에게 말했답니다.  "이 약 먹고 나 죽을 테니까 당신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흥! 먹든지 말든지..."하고 부인은 아기를 업고 밖으로 휭 나가버리고 말았답니다.  밖으로 나간 부인은 친정집으로 가서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때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병원 옆에 있던 사택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사선생님이 바닥에 쓰러져 있더라는 겁니다.

  듣기로는 의사선생님이 그 전에도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부인에게 약 먹고 죽는다고 여러 번 그랬다고 하는데 그날도 부인은 남편이 홧김에 그러겠지 실제로 남편이 약을 먹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약을 먹은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대학병원으로 실려 간 의사선생님은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초상이 나가는 날.  울면서 영구차를 뒤따라가는 부인에게 동네 사람들은 욕을 퍼부었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상처가 이마에 있으니 흉터 되지 않도록 깨끗이 치료해주겠다고 하신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후 흉터치료는 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희미해진 상처는 아직 제 얼굴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가끔 어머니를 생각해봅니다.  여자로서 어떻게 그토록 험한 길을 지나 올 수 있었는지...  그 모진 고통을 참으며 산다는 것에 의문은 가지지 않으셨는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제가 이렇게 시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다만 한 평이더라도 자신의 땅에 무엇인가 심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생각을 은연중에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0
이태원_250109
홍콩 미술 여행
본가_2024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