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0호, 9월21일]
하늘을 우러러
일송정이 있는지 없는지, 해란강이 흐르는지 마는지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본다고 했던가, 달..
[제190호, 9월21일]
하늘을 우러러
일송정이 있는지 없는지, 해란강이 흐르는지 마는지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본다고 했던가, 달리는 차 안에서 일송정과 해란강을 스쳐지나 듯 보고 용정으로 향했다.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에 도착하니 교정 잔디밭의 커다란 비석 위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에겐 시인 윤동주의 모교로 잘 알려진 대성 중학교에는 아직도 중국 동포들이 청운을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대성 중학교는 현재 학교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배움터이기도 하다. 용정이란 곳이 특별한 관광할 꺼리가 없다보니 독립운동이라는 연결고리로 관광자원을 개발했다. 그러다보니 학교 자체가 관광지가 되어 여기저기서 관광 상품을 파는데 가슴이 아팠다. 신문 만드는 일을 근 4년간 해오다 보니 합성사진 여부를 가려내는 눈도 좋아졌다. 교실을 개조해 쇼핑센터로 탈바꿈시킨 그곳에 걸린 백두산 천지의 사진들이 얼마나 조잡스럽던지, 그런걸 두고 진짜 올라가서 찍었다며 입에 발린 거짓말까지 보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이라며 노래하던 윤동주 시인의 모교에서 이렇게 대놓고 사기들을 치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씁쓸한 따름이었다.
반달곰 그리고 웅담주
용정에서 나온 우리는 아시아 최고의 반달곰 사육장 이라는 곳으로 갔다. 엄청난 수의 반달곰들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처음엔 아이들과 함께 멋도 모르고 재밌어 하며 여기저기서 뒹구는 곰들을 신기해 했다. 그러나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웅담 채취실을 지나 웅담 강의실(?)에 들어갈 때에야 이건 곰 사육장이 아니라 웅담채취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많은 곰들이 오직 웅담주를 생산하기 위해서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곳 안내원은 우리 일행을 앉혀놓고 '만병통치약에,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식'의 설명을 숨도 안쉬고 설명하더니 웅담주를 한 잔씩 돌렸다. 저 가엾은 곰들의 쓸개에 빨대를 꽂아 뽑아낸 이 웅담을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웅담주가 특히나 좋은 건 피로에 지친 몸을 추스르는데,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후 그 효과가 최고라는 말에 에라 모르겠다며 소주잔 반잔 정도의 웅담주를 홀가딱 마셔버렸다. 순간 웅담의 그 쓴맛과 비릿함, 노릿내에 속이 뒤집어 질 듯했고, 입안에 계속 곰의 노릿내가 남아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의실인지, 강요일신지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는데, 좁디좁은 우리 안에서 아이처럼 뒤로 벌렁 누운 채 꿀통을 빨아대는 수백 마리의 반달곰이 보였다. 쓸개에 호수를 꼽아 웅담을 채취하는 동안 저렇게 꿀통을 물려주면 달콤한 꿀물에 정신이 팔려 아픈 줄도 모르고 저렇게 행복해 한다나...
안내원의 말대로라면 웅담주 한 잔에 여행의 피로가 바람속의 먼지처럼 흔적없이 사라져야 하거늘 앉을 데만 보면 앉고 싶고, 좀더 넓은 의자라도 보면 눕고 싶은 피로는 고스란히 내 어깨와 전신에 남아있었다.
여행의 끝 그리고 아쉬움
버스를 타고 긴긴 시간을 달리다 중간에 내려 행복할 정도로 맛있고 푸짐한 이밥에 고기반찬으로 허기긴 배를 채운 후 다시 더 긴긴 시간을 달려 장춘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어떤 어르신은 끝도 없이 달리는 이 버스여행을 두고 기네스북에 올리라고 했고, 어떤 어르신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다시는 이런여행은 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넓은 중국 대륙은 한국과 다르다. 한 곳을 보고 난 후 다른 곳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6-7시간을 움직여야 하는 데, 이런 고구려 백두산 역사탐방을 위한 수학여행식 단체여행이 어르신네들에게는 꽤나 힘에 겨웠나보다.
중국 동북지역 여행은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알면 아는 만큼 보인다. 작은 동네의 언덕이 아는 사람에겐 광개토대왕릉이고 모르는 사람에겐 흙 언덕이다. 한 동네의 아파트 외곽 담벼락이 알고 찾아서 보면 국내성이다. 버스를 타고 의미 없이 달리는 이 광활한 땅이 우리 역사의 현장이고 선조들의 땅이니 이 얼마나 감격적인가.

검은 땅거미가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어둠의 두께를 더해가며 검프러지는 저녁 하늘에 왈칵 눈물이 난다. 하루를 우리와 함께달렸던 해는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노을에 마지막 아쉬움을 담아 하늘에 흩뿌리고 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춘다.
한나라 철기군을 무찌르고 승리의 개가를 올리며 어둠을 뚫고 이 길을 이 산야를 달려오는 주몽대장의 외침소리와 고구려 군사들의 들끓는 함성, 말발굽 소리가 그대들이여 들리는가!
감사의 말
4박5일의 길지 않는 여정이었는데 여행기를 쓰다보니 한 석 달쯤 다닌 것처럼 느껴진다.
많이 힘겨웠고 짧은기간동안 많은 것을 보기위해 다닌 단체여행이었던 만큼 아쉬움도 컸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드넓은 땅덩어리와 가난한 삶을 사는 중국이란 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 정도의 버스여행과 기차여행도, 입에 맞던 안 맞던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왔던 음식들도 호강이라면 호강이랄 수 있던 상황이란 것을 여행을 다녀온 후 깨닫게 됐다.
가는 날부터 도착하는 날까지 부족한 나와함께 일정을 함께해준 홍콩의 어르신들, 귀여운 두 꼬마숙녀와 서울의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여행에 합류했던 Jay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여행을 준비해준 한국여행사 김 사장님과 한스앤하나여행사 김 & 한 사장님, 아시아여행사 서 사장님, 한국의 US 여행사 황 사장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함께 기획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주며 오는 날 까지 마음 써주신 아시아나항공의 이준한 지점장님과 박철우 차장님, 사이몬 과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
긴긴 여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여러분들께도 아울러 감사를 드린다.
<글 : 로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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