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호, 10월 26일]
그러다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나쁜 점이야 흙을 제대로 밟아 볼 기회가 없어서 시골 산다는..
[195호, 10월 26일]
그러다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나쁜 점이야 흙을 제대로 밟아 볼 기회가 없어서 시골 산다는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좋은 점도 많습니다.
몇 해 전부터 쌀농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하여 수로를 정비하기 시작하면서 농로포장 공사까지 동시에 하였는데 공사가 완전히 끝난 요즘은 질척거리는 길이나 좁은 길 때문이라든지 가뭄 때문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아예 처음부터 강물을 끌어당겨서 논에 연결된 수로를 통하여 물을 적절하게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로 포장이나 수로가 완벽해지면 뭐합니까? 농사지을 젊은 사람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영농회사에 모내기부터 시작하여 추수까지 농사를 대행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쌀의 가격이 영농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그보다는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다른 농사에 치중하고 품이 많이 드는 논농사는 대리 경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 현재 마을 단위의 소형 정수장 공사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가정집에서 흘러나오는 생활용수와 정화조 물을 정수장으로 받아서 그곳에서 일괄적으로 정수 처리한 깨끗한 물을 인접한 수로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마을 근처에 있는 수로에는 각종 생활용수로 인한 침전물 때문에 여름에는 악취가 나는 곳이 많았지만 이 공사가 끝나면 이제 각 가정에서는 정화조가 필요 없을 것이고 마을근처 개울이 깨끗해 질 것이니 낚시를 해도 될 것입니다.
저희는 농사에 목을 매달고 있는 집이 아닌 까닭에 논농사를 위해 바둑판처럼 완벽하고 넓게 포장된 논길에서 편안하게 농사를 짓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대신 컴컴한 밤중에 안심하고 논길을 산책하고 새벽으로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는 혜택은 누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부터는 동네사람들과 새벽등산을 하느라고 자전거 타는 일이 조금 소홀해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탑니다. 듣기로는 벼가 자라기 시작하는 논에서 산소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내의 설거지가 끝나면 우리는 슬슬 산책 나갈 준비를 합니다. 도시에 살 때는 1년에 몇 번 마음이 내키면 어쩌다가 아파트 뒤 언덕으로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시골에 와서 살면서 밤 산책에 재미를 느끼게 되어서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지무지하게 추운 겨울밤에도 완전 무장하고 산책을 나가게 되더군요.
한여름을 제외하고 시골의 밤은 약간 서늘합니다. 그래서 옷을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섭니다. 동네를 벗어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논길이지만 포장이 완벽하게 되어 있어서 걷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작은 개울 근처로 걸어가면 갑자기 푸드득! 하고 갈대숲속에서 쉬고 있다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서 새들이 날개 짓하는 소리에 처음에는 놀라기도 하였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우리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이 있는 줄 예전에 정말 몰랐습니다.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도로의 차량 불빛들. 지나다니는 차들의 불빛.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귀가 아플 정도로 마구 울어대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1시간정도 논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픕니다...
가을이 시작되고 보름달이 무지하게 밝은 밤의 산책은 별미입니다. 컴컴한 밤길을 다니다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은 달빛을 받으면서 걷는 산책길은 저희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누워 자는 방 창가에는 16년 전 심었던 종려나무 2그루가 아직 잘 자라고 있는데 종려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달빛을 바라보며 즐겨듣는 김 지연의 <프로 포즈>를 CD에 걸고 아스라한 추억에 잠겨 보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좋은 때는 여름날의 아침. 무지막지하게 더워지기 시작하기 전 이른 새벽에 아내와 같이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서 논길로 향하면 그 시간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벌써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가 자전거를 몰고 가는 아내에게 정겨운 눈으로 말을 건넵니다.
"새댁, 아저씨하고 운동가나?" "예, 아주머니, 잘 주무셨어요?" "부지런하기도 하재... 좋을 때다!"
아내의 자전거는 제가 시골로 이사를 와서 사 준 자전거가 아닙니다. 어느 날 이웃집 만호 씨가 아내의 자전거를 빌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회관의 가게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도로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는데 그때 지나가던 덤프트럭이 자전거를 박살내 버렸고, 피해보상금으로 다시 구입한 자전거가 지금의 자전거입니다. 제가 타고 있는 자전거는 아들이 집 근처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기념으로 사준 자전거인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 멀쩡합니다.
아직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은 논길을 저희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달립니다. 부딪치는 새벽바람이 정말 상쾌합니다. 논에는 며칠 전 심은 벼가 서로 빨리 자라기 위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치고 있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르는 풀과 예쁜 꽃들이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은 채 저희 부부에게 인사를 정열적으로 해 댑니다.
늘 다니는 코스를 돌기도 하지만 점차 영역이 넓어져서 어느 날은 미나리 밭, 또 어느 날은 알로에 하우스까지 가기도 합니다. 알로에 하우스는 새벽에 상품가치가 없는 가지를 잘라서 비닐하우스 밖에 버려놓는데 약간의 상처만 있을 뿐 멀쩡하기에 한국의 아주머니인 아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알로에 하우스 코스로 가는 날은 미리 박스를 자전거 뒤에 싣고 갑니다. 물론 두꺼운 장갑도 준비해야 알로에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지 않겠지요. 집으로 가지고 와서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미끌미끌한 것이 처음에는 조금 거북하지만 이내 맛에 길들여져서 잘 먹게 됩니다. 할인점에 가면 비싼 가격표가 붙어있지만 저희는 금방 따내어 싱싱하기 그지없는 알로에를 공짜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이것도 시골에 사는 혜택 중의 하나라고 할까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약간의 땀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곧장 밭으로 갑니다. 밤새 예쁜 새싹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새싹들에게 인사를 하고 새싹 근처의 잡초를 뽑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배추벌레를 잡는 일입니다. 요놈의 배추벌레들이 얼마나 잘 크는지 보일 듯 말듯 작은 놈들이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새 어른 손가락만큼 자라서 배춧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요놈들을 토벌하러 가는 것입니다.
고개를 앞으로 쑤욱 내밀면서 일일이 배추의 속을 비집고 배추벌레를 잡는 일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 고랑의 배추만 검사를 하고 나면 고개가 아파서 일어나서 몇 번 도리질을 해야 합니다. 배추벌레를 잡고 나면 아침에 먹을 과일과 채소를 땁니다. 자전거를 아래채에 넣어 놓고 샤워를 한 뒤 먹는 아침식사는 별미입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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