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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31편 - 시골에서의 자녀교육 문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11-15 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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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호, 11월 16일]   시골에 살게 된지 몇 해가 흐르면서 제 아들은 집 근처에 있는 전교생 300명의 시골중학교로 진학했는데 1..
[198호, 11월 16일]

  시골에 살게 된지 몇 해가 흐르면서 제 아들은 집 근처에 있는 전교생 300명의 시골중학교로 진학했는데 1학년 때는 공부하는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보냈습니다.

  이유는 제가 시골로 이사할 당시 직장 동료와 동업으로 기계 제작회사를 차려서 회사운영에 매달리느라고 아들에게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당시 제 생각은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이 되는대로 어디든 가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주위에 학원은 있었지만 제 생각에 이런 시골에 와서 학원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굴까? 저 사람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나 할까하는 의문이 들어서 학원에 보내지 않았는데 아들도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학원에서 하던 일은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키는 일보다 학원 미니버스로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고 있던 아이들의 등하교 시켜주는 일이 가장 큰 일이고 학교를 마치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싣고 가서 공부를 시키다가 저녁시간이 되면 미니버스로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의 특성상 대부분의 집은 부모님들이 낮에 일을 하러 논으로 가든지 아니면 근처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집이 많았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 공부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것을 염려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이유가 공부를 시키면서 이런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근처에 살던 아이들 중 공부를 조금 한다는 말을 들었던 아이들은 대부분 시내 중학교로 진학을 하였고, 1학년 때와 달리 2학년이 되자 학부모로서 조금씩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5번 버스가 다녔던 시골에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고 그저 시내 중학교로 진학한 동네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미묘한 위기의식 정도만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각 끝에 주위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학습지 하나는 받아 보아야 할 것 같아서 교육진흥원에서 발간하는 에이 플러스 학습지를 받아 보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시험 보면 아들은 30명의 반원 중 언제나 1등을 하기는 했으나 경쟁하는 반 아이들을 생각해볼 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아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갈등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료와 창업했던 회사는 영업적인 면에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었으나 운영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계제작의 특성상 하나의 아이템을 계약하여 설계하고 제작한 후 납품하여 잔금을 수금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자금은 매월 필요하였고, 거래처로부터 수금한 약속어음을 할인하기 위하여 고액의 할인이자를 지불하였는데 이 금액을 계산해보니 저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결국 이익은 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돌아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회사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던 친구가 임원으로 있던 회사가 새로운 생산 공장을 만들기 위하여 5,000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자동화설비를 제작할 업체나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저희 회사가 매월 일정한 금액을 받고 그 일을 맡기로 계약하여 회사의 모든 설비와 인력을 공장건물 공사가 끝난 친구의 회사로 옮기고 작업에 착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3년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하여 영업, 견적, 설계 작업 등 동분서주하면서 허둥대던 시간이 없어지고 설계 작업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과 돈에 쫓기며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우왕좌왕하던 시간에서 벗어 나 마음 편하게 개인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아들의 미래와 현재의 학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볼 수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런 시골중학교에서 공부해 가지고는 희망을 가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진 의문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땅한 방법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주로 새로운 기계를 설계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개발설계를 많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기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기계의 자동화는 눈부시게 발전해왔지만 1994년 당시 한국의 실정은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개발이란 한국에서 만든 실적이 없는 기계를 만든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계를 설계하는 일은 많은 시행착오를 전제로 해야 가능했습니 다.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하고, 수많은 계산을 하면서 설계를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만들어보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문제가 된 부분을 재설계하여 수정작업을 통해 기계는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터득했던 일은 기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초창기 시절에 문제가 발생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가슴 떨리고 난감한 경우가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경험이 쌓여가자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도 점점 세련되어 갔습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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