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호, 11월 23일]
사이쿵으로 이사 온 지 한달 쯤 되었을까?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금은 한가로운 이곳의 생활이 차..
[199호, 11월 23일]
사이쿵으로 이사 온 지 한달 쯤 되었을까?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금은 한가로운 이곳의 생활이 차츰 적응이 되어 갈 무렵 문득 이곳의 아침이 궁금해졌다. 삐걱대는 트램 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던 캐네디 타운의 아침에 비하면, 사이쿵의 아침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다. 보통은 집 옆으로 난 골목길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인사 소리로 아침이 시작 된다.
한동안 쏟아지던 폭우가 그친 여름 아침. 여름답지 않게 시원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벗 삼아 집을 나서 보았다. 조금 이른 오전 5시, 아직은 푸르스름한 하늘에 텅 빈 도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조용한 아침이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도로와 거리의 때가 말끔히 가시고, 나뭇잎과 꽃들은 생기를 찾아 마치 뿌연 안경을 닦은 것처럼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선명해 보인다.

메인 스트리트로 접어들자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장사를 준비하러 온 사람들은 가게 오픈을 서두르고이미 몇 개의 작은 로컬 상점들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 나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조산"이 무척 경쾌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주말이면 늘 사람들로 가득했던 Jockey Club조차 조용한 아침엔 일반 사무실처럼 보이고, 길거리에 떨어진 마권 한 장만이 전날의 여운을 대신 한다. 이 마권의 주인은 아마도 새로운 행운을 빌며, 다른 이들처럼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하겠지!
해산물 식당 거리로 나아가자, 벌써부터 아침 식사 하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한 손엔 신문을 한 손엔 젓가락을 들고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있는 홍콩 사람들. 설마 아침부터 해산물을 하며 살짝 들여다보았더니, 아침의 메뉴는 일반 식당들과 같다. 이른 아침부터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놀랍기도 했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 생활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의 버스 터미널은 이른 아침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세워진 택시 안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는 택시 운전사들도 보인다. 홍콩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의 산책은 대부분 노인 분들이었다. 대부분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었지만, 몇몇은 사이쿵에서 근처 섬을 운행하는 작은 배들의 티켓을 파는 상인들이다.
보통 이들은 해산물 식당이 시작하는 곳에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가끔씩 쉬면서 호객 행위를 하는데, 자세히 보면 각자의 자리들이 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손님이 있을 것 같지 않음에도, 벌써부터 나와서 자리를 잡고, 서로 친근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꽤나 즐거워 보인다.
근처의 공원에는 삼삼 오오 모여 타이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들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신중하게 자세를 취한다. 작은 카세트에서 나오는 음악은 조금 낯설고 시끄러워서 타이치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는데, 그들에겐 일상인지 대부분 비슷한 류의 음악이 여기 저기서 들려 왔다. 타이치가 끝나자 모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꽤 이색적이었다. 각자 다른 곳을 향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꼭 한국 사극 드라마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모습과 같아 재밌었다. 아마도 오늘 하루,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이쿵 비치 쪽으로 발갈음을 옮기니, 어느새 해가 떠올라, 눈이 부시다. 며칠 동안의 비로 인해 우울했던 기분을 한번에 달아나게 할 만큼 햇살이 뜨겁다. 비치엔 몇몇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윈드 서핑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도 아니고 해서, 잠시 바위에 앉아 유유히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마음이 시원해진다. 집에서 나온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슬슬 배도 고프고 조금 쉬고도 싶은 마음에 다시 타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모든 상점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고, 벌써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도 있다.

몇 가지 과일과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7시 30분. 텅 비었던 거리가 사람들로 채워지고, 도로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서울에서도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는 점이다. 저녁형 인간인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간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면,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사이쿵의 아침도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공기는 신선하고, 햇살은 밝고, 사람들은 모두활기에 차 보인다. 매일 같지만, 매일 다른 하루가 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늘 비슷해 보이는 동네가 지겹다고 느껴진다면, 조금 이른 아침의 산책을 권하고 싶다. 분명. 내가 모르는 다른 모습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글 : 박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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