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2호, 3월 7일]
개강 후 몇 주가 흐른 지난 해 9월 마지막 주. 학교생활에 막 적응하기 시작한 그 시기엔 우리 고유의 명절..
[제212호, 3월 7일]
개강 후 몇 주가 흐른 지난 해 9월 마지막 주. 학교생활에 막 적응하기 시작한 그 시기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다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텐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한담?' 좀 더 친해졌더라면 친구 집에 놀러가 함께 명절을 지낼 생각을 해 볼 텐데 아직 그 정도로 친하지는 않고… 긴 연휴기간을 어떻게 보내지… 명절은 북적거려야 제 맛인데 3일이나 되는 명절을 홀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허전함과 쓸쓸함,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우울하게 하였다. 하지만 추석이 되자 나의 이 모든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홍콩의 추석은 어떠한가? 우선 홍콩 사람들은 우리의 추석을 'Mid-Autumn Festival' 이라 불렀 다. 추석을 영어로 표기할 시 우리는 대부분 the harvest(moon) festival 이라하는데 이들은 달랐다. 아마도 중추절(仲秋節)을 영어로 바꾸어 놓은 듯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 같이 모여 함께 정을 나눈다.' 는 의미는 동일했다.
반면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연휴기간이 다르다. 그들의 추석연휴는 단 이틀이다. 한국에서 3일 동안 명절을 지냈을 때는 길다는 생각도 짧다는 생각도 안 했는데 이곳에서 이틀을 지내보니 우리의 3일이 적당한 듯싶었다. 홍콩은 땅이 좁아 아무리 멀리 간다 한들 교통체증이 심하다 한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정부가 이렇게 정한 것이겠지만 이틀은 부족한 듯싶었다. 하루차이인데 확 짧아진 느낌이었다.
둘째, 추석을 보내는 방식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집에서 음식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엔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주부 증후군' 이란 신조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여성 파워가 상당한 홍콩의 경우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듯 했다. 대신에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차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mid-autumn festival의 의미를 되새긴다. 따라서 추석 전날과 당일에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늦은 시간까지 연장 영업을 한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다비노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도와 음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작년 추석을 떠올리니 '홍콩은 정말 여자가 살기 좋은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그들에겐 차례와 성묘의 개념이 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각자의 생활이 바빠짐에 따라 성묘의 개념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아있고, 차례의 경우엔 대부분의 가정에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데 이들은 아니었다. 추석 때 보다는 신정 때만 챙기는 경우가 많고 점차적으로 이마저도 생략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식사 후엔 다 같이 인근 해변 가로 가서 등불놀이 즐기었다. 요즘 들어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각종 램프와 초를 많이 봤다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추석전야제 때 혹은 추석 때 초를 키고 소원을 빌기 위한 것 이었다. 전구가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 모양의 랜턴은 초가 위험한 아이들은 위한 것이고 청소년부터는 야광 팔찌와 폭죽, 초 등을 이용해 등불놀이를 즐기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많은 이들이 와 있어 좋은 자리를 맡기는 어려웠다. 가족부터 친구 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일찍 서둘러와 이곳에서 BBQ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미 식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등불놀이를 하는 내내 솔솔 풍기는 향긋한 BBQ 냄새가 나를 여간 힘들게 했다. 등불놀이를 처음 즐기는 사람이라면 조금 일찍 와 BBQ와 등불놀이를 함께 즐기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어릴 적 캠프파이어처럼 동그랗게 원을 이루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많은 인파가 몰리다보니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보다는 들뜨고 북적 북적한 분위기에 가까웠다. 마치 우리나라 월드컵 때의 광란의 밤을 연상케 했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그들의 축제는 계속되었다. 그 날은 버스와 MTR이 24시간 운행하는 관계로 다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mid-autumn festival을 즐기는 듯 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에 돌아오자 중국 룸메이트 부모님들께서 보내주신 moon-cake 두 상자가 나를 반기었다. 우리나라의 송편이 추석의 대표적 음식이라면 이들에겐 moon-cake이 그러한데 맛도 크기도 색도 아주 다양했다. 오리지널 moon-cake은 제일 처음에 출시된 것으로 달걀이 주가 되는 것인데 느끼하고 속도 더부룩해지는 것이 내 입맛에는 아니었다. 젊은 층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이 선호하는 타입이란다. 열량이 높은 탓에 젊은 층 사이에서는 moon-cake 자체가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지만 요 근래 출시된 Haagendaze의 frozen moon-cake은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내 입맛엔 고소하고 담백한 무화과 moon-cake이 딱이었다. 맛과 향이 좋아 그 자리에서 몇 개씩 먹었더니 금세 동이 나버렸다.
며칠 전만 해도 '긴 연휴기간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했는데 mid-autumn festival은 그렇게 금세 지나가버렸다. 맛있는 것도 하나도 못 먹고 쓸쓸히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잘 먹고 잘 놀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mid-autumn festival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를 홀딱 반하게 한 무화가 moon-cake과 등불놀이인데 홍콩만의 특별한 경험이었던 이는 오래토록 잊지 못할 것 같다.
* 필자는 한국 단국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으로 2007년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자매학교인 홍콩주해대학교에서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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