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2호, 5월 23일]
소고기 덮밥, 제육볶음, 닭도리탕.. 한국은 재료에 따른 음식이 분명하다. 그래서 미역..
[제222호, 5월 23일]
소고기 덮밥, 제육볶음, 닭도리탕.. 한국은 재료에 따른 음식이 분명하다. 그래서 미역국에 돼지고기를 넣는다든지 김밥에 닭고기를 넣으면 새로운 음식을 창조했다고 하기보다는 상식 이하의 행동 혹은 무모한 도전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재료가 주재료인지라 어떤 재료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음식 전체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음식 궁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홍콩은 한국과 반대이다. 한국처럼 처음부터 재료에 따른 음식이 정해진 곳도 있지만 학생인 내가 편하게 그리고 자주 가는 음식점들은 면의 종류부터 고기의 종류, 양념의 종류까지 모두 개인이 선택한다. 본 양념은 동일한 채 향신료만 바꾸는 형태인지라 소고기를 선택했건 닭고기를 선택했건 맛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의 고명과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면 종류의 음식과 카레를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 면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이나 혹은 인도·파키스탄 레스토랑에 자주 간다. 그런데 카레든 면이든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요리에 들어갈 고기를 내가 직접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레를 먹으러 간 어느 날도 여느 때처럼 고기를 선택하는데 친구가 물었다.
"넌 왜 항상 소고기만 선택해?"
"어?"
생각해보니 그렇다. 소고기 외에도 돼지고기, 닭고기, 어류, 채소류 등등 여러 가지 메뉴가 있는데 난 늘 소고기만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우스운 이유이다.
홍콩은 고기 값이 참 싸다. 중국에서 온 것이든 호주에서 넘어온 것이든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싸다. 그래서 처음엔 문제가 있는 고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납성분이 들었다는 중국산 냉동 꽂게라든지 병에 걸린 소나 돼지 등이 심심치 않게 각국 언론에 보도되니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먹어보니 똑같은 고기이다. 부위에 따라 육질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내가 먹어오던 소고기 맛 그대로다 . 물론 우리의 한우와 비교하자면 질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늘 한우를 먹는 건 아니지 않는가. 항상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형편에 따라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들도 있고 가끔 먹는 사람들도 있다. 비싼 가격 때문에 한우가 아닌 수입산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정육점들 역시 수지를 맞추고자 수입산 고기를 취급한다.
혹은 한우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지금은 삼겹살 값이 많이 올라 이마저도 옛말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홍콩의 소고기는 우리나라의 수입산 소고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질 대비 정말 만족스런 가격이다.
싼 고기 값 이외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홍콩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값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닭고기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가격서열이 분명한 반면 여기는 비슷비슷하거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한국에 놀러 갔다 온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내게 늘 묻곤 한다. 고기 값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특히 한우는 어떻게 그렇게 비쌀 수가 있냐고..
우리 집은 한우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잊을 때면 한 번씩 우리 가족의 마음을 보여주었던지라 나는 한우보다는 돼지고기가 더 친근하다. 한번을 먹더라도 좋은 것을 먹자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국산 고기를 즐기다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다보니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머리와 습관 속에 '소고기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보다 더 좋은 고기이다'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나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를 놓고 하나를 고를 때면 언제나 소고기를 선택하는 걸 보면 말이다.
친구의 물음에 위의 이야기를 답변으로 해주었더니 그럴듯하다며 웃는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돌아가기 전에 더 많이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질려서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 말이다.
요즘 수입산 소고기 전면개방으로 한국이 많이 시끄럽다. 서명운동에서부터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국민 대다수가 반대의 뜻을 거세게 표현하고 있다. 몸은 홍콩에 있지만 나 역시도 불안한 마음이,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내 앞날 하나도 생각하기 벅찬지라 나라님이 어떤 큰 뜻을 가지고 개나 고양이 사료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30개월 이상 소까지 개방하는 것인지 사실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먹기 위해 살든 살기 위해 먹든 우리는 항상 먹는다. 그리고 소고기가 사용되는 음식은 비단 한 가지가 아니다. 양념에서부터 주재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앞서 말했지만 국민 모두가 항상 한우를 먹을 수는 없다. 한우보다는 값이 싼 수입산 고기를 먹는 일이 많고, 구내식당이나 외부 식당에서는 수입산 고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마음이 불안한데 값이 떨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찬성하는 이들은 확실치 않은 정보를 갖고 지레 겁부터 먹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문제라 하지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설사 희박하다 할지라도 그게 나일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된다. 예고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것이 사고이니 말이다. 아마도 이제는 가격 때문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에 소고기를 못 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흘러 몇 년 후 홍콩에 다시 왔을 때, 친구가 "너는 왜 소고기만 선택해?"라고 다시 묻는 다면 그때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큰 이변이 없는 한 "한우는 값이 비싸서…" 아니면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둘 중 하나겠지? 그런데 어떤 답변이 됐건 둘 다 슬픈 답변이라는 점이 참 애석하고 씁쓸하다.
<글 : 조현주 (-amicca-@hanmail.net)>
* 필자는 한국 단국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으로 2007년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자매학교인 홍콩주해대학교에서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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