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호, 6월 6일]
열정으로 들끓는 투우장 속으로
투우경기가 텔레비전 화면에 보듯 그렇게 끔찍하고 야만적인 경기일까,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투우의 매력은 무엇일까.
하루 일정을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길만 나서면 반대로 가는 우리는 투우장을 잘 찾을 수나 있으려나 심히 염려돼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벤타스 투우장으로 가는 노선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 벤타역에 도착하자 그 많은 사람들이 몽땅 내려 우르르 출구로 나간다.
사람들의 손에 방석과 담요가 들려 있다. 얼마나 열심히 보려고 저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했나 싶어 웃음이 난다.
메트로 출구를 빠져나가자 마자 광장이 나타나고 가이드 북에서나 봤던 벤타스 투우장의 실체가 나타난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투우장은 입구부터 발디딜 틈 하나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어느 장사치가 앉을 방석을 대여해준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이 모두 방석을 가져오거나 대여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 싶어 우리도 방석을 대여한 후 그들 행렬에 동참해 투우장으로 들어선다. 눈앞에 드넓은 투우장이 척 펼쳐진다. 딱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2만2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벤타스 투우장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투우장으로 스페인 투우사라면 꼭 한번 경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기를 원하는 곳이다.

어렵사리 자리를 찾아 앉으니 우리 자리는 다행히 앞에서 7번째 줄이다. 너무 앞이지도 너무 뒤이지도 않아 다행이다. 혹여 너무 가까이 앉았다 투우의 피라도 튀길지 누가 알랴.
투우장의 시계가 1초의 오차도 없이 7시를 가리키는 순간 장내에 대기하고 있던 악단이 투우 시작을 알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관객들은 이쪽 저쪽에서 "올레 올레∼"를 외쳐댄다.
투우가 시작되기도 전이건만 가슴이 벌써부터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투우는 약 2시간동안 진행이 되는데, 모두 6마리의 소와 3명의 마타도르(메인 투우사)가 출전한다. 1명의 마타도르는 소 2마리를 상대한다.
마타도르는 휘하에 3명의 반데리예로(단창잡이)와 2명의 피카도르(창잡이)를 거느리고 투우를 한다.
투우는 황소가 투우장으로 뛰어 들어가면 시작이 되는데, 24시간 전부터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몸에 딱 맞게 짜여진 우리 속에 갇힌 채 먹이와 빛이 없는 상태에서 갇혀 있던 황소는 약이 오를 대로 바짝 올라 있다가 문이 열리면 투우장으로 미친 듯 달려 나온다. 눈부신 세상, 열광하는 관중들의 아우성 소리에 흥분한 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투우사들은 이런 소의 움직임을 확인한 후 경기를 진행한다. 먼저 완전무장한 말을 탄 피카도르(창잡이)가 소의 등에 창을 꽂아 마타도르가 검을 잘 꽂을 수 있도록 소의 기세를 누그려 뜨린다.
투우사가 분홍 천으로 소를 몰아주면 3명의 반데리예로(단창잡이)가 등장해 화려하게 수놓인 짧은 창 두 개를 3차례에 걸쳐 소의 급소에 찔러 넣는다.
관중들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분노한 황소는 피를 뚝뚝 흘리며 투우사의 농간에 놀아난다. 덩치 큰 수소가 흘리는 피의 진하고 역한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관중석까지 날아오고, 바짝 긴장한 관중들이 꾸역꾸역 내뿜는 시가 연기에 냄새까지 뒤섞여 속까지 메슥거리게 만든다.
투우사들에 농락당하며 들끓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는 소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첫 번째 소가 어떻게 벌러덩 나가떨어졌는지 놓치고 만다.
두 번째 소가 다시 의기양양하게 등장해 푸푸 소리를 내며 앞발로 땅을 파댄다. 한 마리를 보내고, 두 마리째의 소를 접하면서 서서히 투우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3명의 반데리예로(단창잡이)가 정면대응하고 있던 소에게 달려가 창을 찔러 넣고 피하는 모습이 마치 무용수 같다.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대상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소가 아닌 이런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지막 순간, 마타도르가 투우장에 등장하자 관중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넓은 투우장에서 마타도르는 수소와 일대일 대결을 펼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투우사의 움직임에 따라 성이 나 날뛰다가가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한 듯 숨을 몰아쉬며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마타도르는 물레따(붉은 보자기)를 흔들며 소를 다시 흥분시켜 아슬아슬하게 자기 몸 가까이 소를 통과시키기를 반복한다.
얼마나 가까이 소를 지나치게 하는지에 따라 마타도르의 인기는 달라지고, 소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거나 소와 눈싸움을 하며 뿔을 만진다거나 하는 등의 위험천만한 연기를 펼칠 때마다 관중석은 흥분으로 들끓는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올레 올레∼"를 외쳐댄다. 그제야 나도 투우사의 움직임에 환호하고, 화려한 연기와 강렬한 카리스마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경기와 관중들의 반응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투우사에게 에스빠다(검)가 전해진다. 물레따에 검을 숨기고 있던 마타도르가 에스빠다를 꺼내 높이 들고 왼쪽 발뒤꿈치를 세운 채 마지막 자세를 취한다. '아 제발 한 번에 끝내주기를...'
정확하게 한 번에 긴 에스빠다를 소의 심장에 꽂아야 한다. 그래야 깔끔하게 경기가 마무리되고, 소도 고통을 덜 느끼며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타도르가 소의 등을 향해 깊숙이 에스빠다를 꽂아 넣자 관중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고, 그 덩치 큰 황소가 비틀대다가 피를 토하며 쿵하고 쓰러진다.
트럼펫 소리가 울리자 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말들이 달려 나와 소를 끌고 나간다. 소는 투우장 밖의 해체실에서 해체돼 레스토랑에 비싼 값으로 팔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투우는 원래 그리스에서 신에게 제물을 비치는 의식의 하나로 시작된 것이 스페인에 와서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런 투우경기를 두고 인간의 '결혼'과 연관을 짓는다. 그들은 소가 바로 남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은 투우경기에 쓰일 소를 따로 사육하지만 원래는 야생에서 살던 소를 잡아다 경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뽐내며 마음껏 여자들을 범하고, 원하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살던 야생의 투우는 신랑, 화려한 복장으로 물레따 속에 에스빠다를 숨기고 소를 유혹해 결국 무릎 꿇게 만드는 투우사는 신부, 그 어느 곳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이 그들을 가두고 있는 투장은 결혼, 그리고 숨 막히도록 긴강잠 넘치는 투우경기는 신혼 첫날밤이라는 것이다.
결국 투우사의 칼을 맞고 무릎을 꿇는 투우처럼 한 여자에게 정복당하고 마는 것이 남자의 운명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어리석게도 투우사의 화려한 차림과 물레따의 움직임에 속는 것도 남자들의 속성과 닮았다는 주장이다. 일리있는 주장인듯도 하여 고개가 끄덕여진다.
투우!! 물론 잔혹하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투우는 하나의 스포츠이고 전통이며 스페인 서민들의 삶이고 문화이다. 스페인 사람 중에서도 투우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투우를 단지 동물을 죽이는 데 사람들이 환호하고 쾌락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환호하며 관람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관람한 투우는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환호하는 동안 스페인 문화의 한 부분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내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계속...... / 글·사진 : 로사 rosa@weeklyhk.com>
* 대한항공은 인천~마드리드 구간 직항편을 주3회(월, 목, 토) 운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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