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호, 7월 11일]
야~ 중국인이다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특히 유럽여행을 가끔가끔 다니면서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홍콩에 살면서 야곰 야곰 배운 만다린 덕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이태리를 여행하면서도 나는 중국사람들의 덕을 톡톡히 본 탓에 이젠 아예 이국땅에서 중국인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 이상으로 반갑다.
마드리드 거리에서도 노점상을 하고 있는 중국을 만나면 "너 중국인이지, 우와~ 무지 반갑다, 나는 홍콩에서 왔어, 진짜 반갑다"며 무턱대고 달려들어 말을 걸다보니 나중에는 후배녀석이 "헹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중국인이 드디어 나타났다'며 놀리기에 이르렀다.
세비야에서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버스터미널로 갔다. 밤 12시 버스다 보니 정류장의 분위기는 꽤나 으스스하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있는 동양 여성 2명이 보이자 후배가 정신없이 달려가 그들 앞에 자리를 딱 잡고 앉는다. 장난기 넘치는 그의 얼굴에 '내가 이렇게 헹님을 배려합니다요'라고 쓰여 있어 알밤이라도 콩 쥐어박고 싶은 걸 주변을 의식해 꾹 참고, 허옇게 눈만 흘기며 앉는 다. 우릴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들이 웃음을 참다못해 큭, 터트리고 만다. 우리 넷은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 앉아 한참을 키득키득 거린다. 휴가차 바닷가로 여행을 간단다. 여차 하면 도움을 청할 그들이 있어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해진다.
포르투갈 - 리스본 입성

밤 12시가 되자 리스본으로 향하는 유로라인 버스가 도착한다. 큰 가방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올라타려고 하니 안내원이 등에 맨 배낭도 넣고 타란다. 도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망설이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아무
렇지도 않게 가지고 있던 짐들을 몽땅 내려놓는다.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우리 둘이 앉을 자리가 없다. 표에는 좌석번호도 표시도 없다.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우릴 보더니 나홀로 여행에 도가 터 보이는 한 한국남성이 아무데나 앉으면 된다고 귀띔해준다.
하는 수 없이 각각 떨어져 앉았는데, 짝꿍 운이 좀 있다 싶은 내 옆에는 그런대로 점잖게 잘 생긴 중년 아저씨가 매너 좋게 않아 있고, 후배 옆에는 덩치 큰 중동 남자가 진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앉아 있다 버스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코를 드르렁대며 곤다.
버스는 밤새 달리고 또 달린다. 얼마를 달렸을까, 달콤한 꿈을 꾸다 깜짝 놀라 깼다. 먼동이 뿌옇게 밝아온다.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잠든 사이 버스는 이렇게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놓으니 말이다. 해뜨기 전의 몽롱한 리스본의 분위기가 맘에 든다.
우리가 예약했던 호텔로 가자, 가서 세수라도 하고 길을 떠나자.
이런 날강도 같으니라구!!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한다. 20분 이상을 달렸는데도 택시는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시내로 접어들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결국, 지나가던 택시기사에게 물어서 겨우겨우 우리 호텔을 찾아 멈춘다. 미터기에 25유로라로 찍혀 있어 100유로를 내민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계산기를 한참 두드리더니 58유로라며 거스름돈을 적게 준다. 이게 웬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린가, 택시 요금이 왜 미터랑 다르냐고 따지고 드니 아저씨의 인상이 맷돌에 간 듯 구겨진다. 그리고는 전혀 알수없는 포르투갈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에 질세라, 덩치 크고 목소리도 큰데다 한 인상하는 후배가 그에 맞서 내지르는 소리도 꽤나 무섭고 앙칼지다. 나는 택시에서 뛰쳐나가 호텔 직원을 기사 면전까지 데려다 놓고 이 기사가 사기를 친다며,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호텔 직원의 통역에 의하면, 처음 우리가 택시를 탈 때 주소를 보이며 발음을 다르게 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 기사는 길을 헤매게 됐고, 이른 아침부터 길을 찾아 헤맨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대가를 요금에 합쳐 우리에게 요구를 해왔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날강도가 또 어디에 있을까, 내가 설령 발음을 다르게 했다손 치더라도 호텔이름과 주소를 보여줬으면 주소대로 가야지... 에이, 천하에 순 날강도같으니라구!!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목청을 높이는 후배에게 택시기사는 두손두발 다 들었는지 거스름돈을 고스란히 돌려주고는 쌩하니 도망을 가버린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는 오늘 아침 KO승을 거둔걸까, 판정승을 거둔 걸까?
세수만 하고 바로, 여행지로 떠나기로 했던 우리는 너무도 럭셔리한 호텔분위기에 취해 몸도 마음도 와르르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만에 뜨끈뜨끈한 물을 욕조가득 받아놓고 피부에 뿌옇게 쌓였던 세상의 먼지와 덕지덕지 붙은 여독을 물에 퉁퉁 불려 몽땅 벗겨낸다.
그리고는 뷔페식당으로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웃음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눈부신 아침햇살 속에서 황홀한 아침식사를 한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황후처럼 지내는 거다.

다시 거리로 나선다. 리스본 앞의 떼주강이 마치 바다같다. 아름다운 코메르시우광장을 지나면 8월 거리(아우구스타 거리)가 나온다. 리스본에거 가장 번화가란다. 아름답다. 이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술술 새어나온다. 스페인이 세련된 도회지의 모습이라면 이곳은 투박한 지방도시 같은 느낌이지만, 건물 하나하나, 바닥에 깔린 타일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 있다.
책에서 알아낸 정보대로 우린 도시를 가득 채우는 리스본의 명물 트램을 탄다. 트램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빨래가 걸린 주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다. 꽤나 스릴이 있다.
떼주강과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내려 한 폭의 그림 같은 리스본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는다.
리스본 소박한 풍경이 정말 좋다. 1960년대 유럽의 모습 그대로다. 그 때 모습은 모르지만 그러려니 한다.
다시 트램을 잡아타고 내려온다. 갑자기 너무 조용해진 후배가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보니 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늘 아침, 방바닥에 등대고 누워본지 너무 오래된 거 아니냐며 엄살을 떨더니, 그게 엄살만은 아니었나 보다.
한 입에 털어 넣은 감기몸살약의 나른한 약기운과 차창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취해 눈이 절로 감기는 모양이다.
후배는 그렇게 전차가 거리 예술가와 지구 끝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축제라도 벌
이듯 들뜨고 행복한 8월의 거리에 다다를 때까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리스본, 나와 너의 추억은 여기까지. 추억이 그리움이 되면 다시 오마. 고맙다 나의 리스본, 나의 포르투갈.
아참, 그런데 포르투갈은 마카오령이던가? 갑자기 내가 두고 온 홍콩 옆 마카오가 궁금해진다.
<계속....글.사진 : 로사 rosa@weeklyhk.com>
* 대한항공은 인천~마드리드 구간 직항편을 주3회(월, 목, 토) 운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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