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3호, 8월15일]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나는 유럽 여행은 건물 하나, 거리에 박힌 돌 하나,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제233호, 8월15일]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나는 유럽 여행은 건물 하나, 거리에 박힌 돌 하나,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예술이기 때문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곳에서는 너무도 크게 가져왔던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또 우려하는 것처럼 길거리에서 테러나 소매치기, 강도 등을 당할 확률도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이태리의 경우 '소매치기'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악명이 높지만 그에비해 스페인은 양반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남쪽에서 하늬바람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어느 날 문득 또 다른 도시에서의 이방인을 꿈꾸는 집시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세상에서 온 이방인들의 가방을 독수리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그렇게 휙 낚아채버리니 말이다.
이들 뿐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특히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나 중동에서 온 사람들이 그들처럼 우리를 노린다.
소매치기를 만나다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도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 느즈막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발디딜 틈 없는 지하철 내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는데 동남아인인 듯 한 젊은이가 후배 뒤로 이상할 만큼이나 바짝 붙어서 탄다. 여기도 추잡한 성 추행범이 다 있나 싶어 주의깊게 살펴보다 별다른 기색이 없어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후배녀석의 앙칼진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이것 봐. 뭐하는 거야" 순간 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힌다.
등에 맨 후배 배낭의 지퍼가 열려있다. 녀석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후배가 가방이 휘청하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그의 손이 배낭안에 들어가 있더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 같으면 벨을 눌러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하네, 경찰을 부르네 난리를 부리겠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만다. 그들 눈빛 속에서 '그래도 안 잃어버렸으니 다행이다. 그냥 감사해라'는 메세지가 느껴진다.
이 소매치기 녀석은 "어, 알았어, 내린다구. 내려"이러면서 다음 역에서 유유히 내리고, 지하철 안는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평화속으로 돌아간다.
거리에서
바로셀로나 거리를 걷다보면 동화속을 걷는 듯 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분장 한 사람이나 오즈의 마법사 속의 동물, 마법사 등의 분장을 한 사람도 만난다. 또 닌자 거북이도 만날 수 있고, 꽃으로 환생한 이들도 만난다. 또 2% 부족한 이소룡도 만날 수 있는데, 더 웃긴 건 어쭙잖은 스모선수다. 재밌다. 스페인의 거리나 광장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지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서 그렇게 많은 과일은 처음 본 듯 하고, 홍콩에서 비싸서 엄두도 못 낼 과일들이 거의 헐값에 거래되며 맛도 기가 막히다. 과일을 파는 아줌마나 아저씨의 모습도 어찌들 그렇게 생동감있고 리얼한지, 껍질을 까면 과습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오렌지 가게 아줌마의 과감하고 섹시한 모습에는 눈길이 절로 멎는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길
10박11일 이라는 긴긴 여행일정을 마치고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다. 비즈니스 클래스 체크인 카운터에 가서 여권을 내미니 신속하게 처리가 되고, 남은 시간에는 라운지에 올라가서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는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임박해 기내로 들어가다 이광열 지점장을 만난다. 인력이 부족한지 직원 두어 명을 데리고 숨가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온다.
그런 와중에도 여행은 잘 마쳤느냐며 우릴 보고 활짝 웃는 모습에 그분의 인간미가 느껴진다.
넓고 쾌적한 대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으니 마치 긴 방황 끝에 고향에라도 온 듯 편안해 진다. 앉는 순간부터 지극 정성으로 상큼한 음료부터 최고급 와인은 물론 호텔급 음식과 간식 등이 끊임없이 나온다. 밤새 먹고 자느라 더부룩해졌던 속이 아침에 나오는 따끈 따끈한 죽 한 사발로 싹 정리가 된다.
잠이 쏟아진다. 그동안 쌓였던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오나보다.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엔진 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 꿈속에서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만든 빠삐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인간이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써나갈 별을 찾아 떠난다. 수억만년이 흐른 어느 날 인간의 후손에 또 다른 후손, 또 까마득한 후손이 어느 날, 살아있는 별에 도착해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내 눈이 떠진다.
아, 긴 긴 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도착했구나. 나의 별, 나의 삶이 시작 되는 곳, 바로 이곳 홍콩에....
스페인 여행기 12회를 마지막으로 부족했던 글을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저의 여행기를 통해 스페인을 함게 여행해주신 많은 위클리홍콩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대한항공 홍콩지점의 윤진호 지점장님과 김제범 부장님 그리고 임보경 과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끝.
* 대한항공은 인천~마드리드 구간 직항편을 주3회(월, 목, 토) 운항하고 있다.
<글·사진 :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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