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펀드, 가슴 뚫린 투자자들
해법은 TV·인터넷 끄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24시간 단말기 체크族, 새벽~한밤까지 세계증시 보며 울고 웃고
자동차 보급대수(1640만대)보다 많은 펀드 가입숫자(2400여 만 계좌) 덕에 '펀드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이 온통 '펀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증시가 폭락했을까봐 "아침이 무섭다"는 투자자들이 넘쳐나고, 인터넷 펀드 카페엔 '나의 펀드 실패담' 같은 엽기적인 사례 소개 코너가 더 성황 중이다.
연초 이후 개인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액만 51조7000억원. 1500여개의 펀드 상품 중 연초 후 수익률 플러스인 펀드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펀드 스트레스'는 계속 진행형이 될 전망이다.
◆24시간 증시 중독증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34) 과장은 하루 종일 글로벌 증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증시 중독증'에 걸려 있다. 작년 12월 초 모 증권사 직원에게 들은 "글로벌 증시가 대부분 바닥을 찍고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게 빌미가 됐다.
당시 남들의 '펀드 대박' 소식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던 그로선 '바로 이때'란 생각에, 모아둔 결혼자금에다 은행 대출까지 끼고 전재산보다 많은 1억5000만원을 중국 펀드 등 5개 펀드 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수익은커녕 원금의 60%를 날린 지금 그는 우울증에 가까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의 하루 일상은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글로벌 증시 개장 일정에 맞물려 돌아간다. 퇴근 후 새벽 1시까지 뉴욕 증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장이 끝나는 새벽 5시면 어김 없이 눈이 떠진다. 그는 "뉴욕 증시가 상승했으면 머리가 확 맑아지고, 떨어졌으면 몸이 천근만근 늘어진다"고 말했다.
오전 8시쯤 출근후의 일정도 글로벌 증시 시간표에 맞춰져 있다. 우선, 국내 증시가 개장하기 전까지 미국 나스닥 선물지수를 체크한 뒤, 중국 상하이 증시 확인 (오전 10시 30분 개장)→홍콩 증시 확인(오전 11시 개장)→인도 증시 확인(오후 1시30분 개장)→유럽 증시 확인(오후 5시 개장)→미국 증시 확인(저녁 10시 30분 개장)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진다.
그는 "아예 안 보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최근 들어 각국의 증시가 워낙 요동치고 있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불면증, 울화병…
지난 7월 말 홍콩 H주 주가지수가 향후 1년 동안 40% 이상 폭락하지 않으면 20%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주가연계증권(ELS) 펀드에 2억원을 투자했던 회사원 남모씨(39). 지난 8일 원금 보장선이 무너져 원금 중 1억원을 날리면서 신문을 봐도 주식 소식에는 아예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그러지 않으면 울화병이 도지기 때문. 펀드 가입 당시 "전쟁만 나지 않으면 연간 20% 수익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큰소리치다가 지금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증권사 직원만 생각하면 더더욱 울화통이 치민다. 그는 "내년 7월 말까지 주가가 다시 급등해야 원금이라도 챙긴다"면서 "기도까지 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투자자들도 쏟아진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작년 10월 중국식 펀드에 1000만원을 넣은 박모 (여·26)씨는 은행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1년 계약이 끝나 자동환매되는데 120만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역외(域外)펀드라서 환율 급등으로 인해 계약을 연장하려면 380만원을 더 넣으라고 했다. 박씨는 "수중에 380만원은 없고, 그렇다고 120만원만 돌려받는 것은 더 못하겠고 억울해서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재테크 포털인 '모네타' 같은 각종 인터넷 펀드 카페에는 "휴대폰 문자로 날아온 펀드 손실률이 50% 이하, 어찌 하오리까" "편두통보다 무서운, 백약이 무효인 펀드통" 등의 글들이 도배되고 있다. 또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손실내용을 앞다퉈 공개하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박봉에 2000만원 모으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한 방에 날렸습니다" 등의 신세타령이 줄을 잇는다.
주부 김모씨는 "교육비 등을 위해 투자한 어린이 펀드 때문에 요즘 어린 딸까지 TV를 보다가 '엄마, 펀드 수익률 또 엉망이 됐네'라고 말을 거들 정도"라며 "펀드가 온 가족에게 고통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TV를 끄고 평정을 찾아라
'펀드 스트레스'에 대해 뾰족한 묘약은 없다. 특히 투자가이드 차원은 더더욱 없다. 삼성증권 김휘곤 연구 원은 "1~2년 투자한 사람들의 경우 여기서 포기하면 고점에 사서 저점에 매도하는 꼴이 돼버리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라는 얘기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IMF 외환위기 때처럼 요즘도 펀드 손실을 호소하며 찾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면서 "펀드로 인한 손실을 숨기려고 하지말고 가족 등 주변과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펀드 스트레스는 우리만의 문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투자 손실로 공황 심리 상태를 보이는 이들에게) 주식시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는 사람을 주로 만나고, 공포감을 전이하는 주범인 TV와 인터넷을 멀리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전문가의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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