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창으로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사는 한 친구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책장을 사야겠는데 집이 좁아서 베이윈도우 밖에 놔둘 데가 없잖아. 그 좋은 경치를 다 가리게 생겼지 뭐야." "집이 좁다기보다 책이 너무 많은 거겠지." 유난히 책에 집착하는 그녀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때문인지 그녀처럼 잡지 한 권 속 시원히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비단 책뿐 만인가. 헌 옷가지, 살림도구, 인테리어 소품, 가전제품, 컴퓨터 부속, 앨범, 서랍 가득 잡동사니 등에게 생활공간을 내주고 코너로 물러난 집주인들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1998년 런칭한 Yellow Box는 고객에게 창고를 빌려주는 영국회사다. 런칭 이래 39개 시설을 오픈하고 추가로 19개 창고시설을 짓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땅에서 개인이 빌려 쓰는 보관창고를 모두 합한 면적은 맨해턴 섬의 3배에 이른다. 그들은 극장가, 음반시장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온·오프라인과 홈쇼핑에서 사들인 물건들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 수에 비례해서 보관창고 사업은 확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얼마 전 홍콩섬 어딘가에 Storage를 빌릴 뻔했던 기억이 난다.
집안에 두지 못한 물건을 변두리 창고에 맡기는 이들이 늘어난다고 그들을 유행처럼 따를 필요는 없다. 수시로 쿨하게 드나들 수 있는 창고를 부러워할 이유도 없다. 왜냐고? 환경정리 전문가 크리스 맥켄리의 말대로, 우리는 생활의 80%를 가진 옷 20%만 입고도 잘 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쓰는 양에 비해 너무 많이 사들이고 모으는 경향이 있다. 과식을 자제하지 못 하듯 구매를 멈추지 못 하기 때문에 외딴 곳에 방까지 빌리게 되는 것이다.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의 우선순위와 한계를 무시할수록 창고의 평수도 늘어나 두집 살림 수준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연말에 집 정리를 하겠다던 사람을 새해 첫 주에 만났더니 똑같은 말을 했다. '옷이든 물건이든 안 쓰는 건 죄다 버리고 산뜻하게 좀 살아보고 싶은데…' 대청소를 하고 나면 분위기만 산뜻한 게 아니라 마음까지 가뿐해서 능률이 오른다. 이래저래 득이 되는 일인데 실천이 힘든 건 왜일까? 그건 당장 옷장, 책상서랍을 뒤집어엎을 의욕은 있지만 깔끔하게 마무리할 지구력이 딸려 시작 자체를 미루기 때문이다. 능률만점 공간의 탄생을 앞당겨줄 몇가지 아이디어를 체크해 워밍업을 시작해보자.
이 달의 액션 포커스
1. 가장 먼저 시작할 곳을 택한다. 옷장을 치우다말고 책장을 뒤적이고 신발장에 손을 대면 집안은 엉망이 되고 정신도 산만해서 금방 지친다. 서랍 하나, 옷장 한 칸이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끝마치자.
2. 기준을 분명히 정한다. 사용빈도, 실용성, 디자인 등등 정리기준이 명확할수록 분리가 쉬워 정리에 속도가 붙는다. 나는 대청소를 할 때마다 따져본다. A.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물건인가, B. 자주 필요한 쓸모 있는 물건인가, C.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니크한 물건인가?
3. 지루함? No, thanks! 처박아둔 옷가지, 출처가 모호한 잡동사니들, 잘 나오지도 않은 앨범 사진들을 죄다 꺼내 들여다보는 건 즐거운 오락이 아니다. 경쾌한 음악, 코믹한 영화, 향긋한 커피 한잔으로 기분을 최대한 Up, Up, Up시키도록 하자.
4. 한방에 해치우지 말자. 앉은 자리서 끝을 보려는 한국적(?) 욕심은 시작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한다. 방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모든 걸 혼자 해야된다는 고정관념도 함께 버리자.
5. '완벽'보다 '완수'를 위하여! 잡지에 나온 청담동 저택들을 보고 나니 속옷서랍 정리할 기분이 안 난다고? 당장 사랑의 집짓기 사이트에 들어가 보라. 속옷서랍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남의 완벽을 부러워할 에너지를 주어진 일의 완수에 쏟아 붓자. 잡지는 그 다음에 들여다봐도 늦지 않다.
6. 정리정돈은 선행이다. 물건을 없애는 게 죄스럽다면 재활용이나 기부를 하거나 주위에 넘기도록 하자. 나의 고물에게 누군가의 보물이 될 기회를 허락하자.
<글·베로니카 리(veronica@coaching-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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