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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칼럼]모국어의 힘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02-12 10:40:42
  • 수정 2009-02-19 11: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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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7호, 2월13일
Ms. Gladys Shin
홍콩한국국제학교 한국어과정, 초등 6학년 원어민교사



영어를 잘 하면 대우를 받고, 견문을 넓히고, 지구촌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있어서는 정말 필수적인 것이지만 지금처럼 영어 공부에만 미쳐 있는 한국사회는 분명 비정상적이다. 이러한 한국사회 풍조에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됐다.

나는 12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그리고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커서 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스쿨버스 타기가 두려운 나머지 아버지한테 매일 학교까지 데려다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한국에 두고 온 초등학교 친구들이 참 그리웠다.  그러다 차차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생기고 아시아계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동네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점점 미국 사람이 되어 갔고, 모국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은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졌다. 오히려 무의식중에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미래 지향적인 마음으로 영어 및 미국 문화로 내 자신을 무장하려 했는지도.

하지만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국 교포들과 유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미국 사람이 다 된 나에게 있어 유학생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불친절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로 다가왔다. 왜 이리 사적인 질문들을 많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는 있는지, 또 아파트 월세는 얼마 내는지 등등 에티켓에 벗어나는 이런 질문들을 한국 친구들이 물었을 때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또 왜 이리 부탁들은 많이 하는지. 숙제 좀 도와 달라, 에세이 써 달라, 전화인터뷰 대신 해 달라 등등. 혼자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치우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남에게 의지하려는 심리, 그리고 부탁을 쉽게 할 수 있는 대담성이 의아했다.

또 아주 어렸을 때 이민 온 교포 친구들은 한국어가 서툴렀다. 영어 '만' 써온 경우가 많아서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도 영어를 쓰도록 권유한 사례가 많다), 나중에 정작 그렇게 교육 시켜주신 자신의 부모님과도 대화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문화의 차이가 생기는 현상을 보았다. 영어가 더딘 친구들은 일상생활이 힘들어 보였지만, 한국어가 더딘 친구들은 마음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대화의 한계로 마음이 힘든 친구들은 되레 가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식처를 찾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교포이던 유학생이든, 이런 한국 친구들이 서양 친구들에 비해 다른 점은, 대부분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편하게 자기한테도 부탁하라고 되레 내게 정을 먼저 준다. 결국에는 웃을 때도 울을 때도 항상 곁에 더 진솔하게 남는 친구들은 한국인일 때가 많았다. 나의 피부 색 그리고 내가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정을 더 주는 이 단체의 매력에 이끌려 나는 미국에서 점차 한국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왜 서양인들보다 우리 한국인들이 정이 많은 민족이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 미국을 떠나 이제 미국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홍콩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해 보니, 편지로나마 서로 가끔 연락을 취했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언제나 늘 반갑게 맞이해준다. 미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미국인인 나. 하지만 미국이든 홍콩이든 사회는 나를 한국인으로서 먼저 인정을 했고, 나는 거기에 맞춰 점차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 어느 곳에 살더라도 한국 사람으로서 태어나 한국과 거리를 두면서 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사회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 교포, 캐나다 교포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활용해서 인맥 쌓기에 집중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고 또 어렸을 때부터 한국 사람들과 친분을 쌓은 사람에게 있어서 훨씬 유리한 일이고, 또한 이러한 사람들이 국제무대에서도 결국에는 성공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냉정한 사회생활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자신에게 우호감을 가지고 있는 같은 동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듬직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인 같이 끈끈한 민족에게는 이러한 동포애와 우정은 "자산"이 아닐 수 가 없다.

나는 어느 정도 "미국문화" 와 "한국문화" 를 원하는 대로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주는 도구는 바로 나의 언어이다. 어느 문화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언어처럼 유력한 힘을 지닌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최소한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해 주신 부모님이 지금은 너무 고맙다.

하물며 요즘 사회는 내가 보낸 어린 시절보다도 유리한 점이 많이 있다.

홍콩한국국제학교만 보더라도 하루 수업의 반 정도는 한국어로, 다른 반 정도는 영어로 주 과목을 가르친다. 각 반에 국어교사, 영어교사 담임이 도입된 제도이기에 아이들이 수시로 모국어인 한국어와 영어를 접하면서 교사들의 다른 문화와 언어에서 오는 장점을 가지고 여러 과목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영어를 익힌다. 국어책을 낭독하다가도 바로 다음시간에 영어로 수학 문제를 풀고 토론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적응 능력이 나름 신기하고 뿌듯하다. 또한 언어란 사고를 조정하는 도구이기에 한국어, 영어를 수시로 구사하면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지각력이나 태도의 유동성을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현재 한국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모든 한국 학부모님께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다. 아무리 영어 실력을 키워야 요즘 같은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서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자녀의 모국어 실력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어릴 때부터 가꾸고 키워 나가야 한다. 그 어떤 외국인의 눈에도 모국어를 잘 못하는 한국 사람보다는 모국어'까지'잘 하는 한국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며, 앞으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만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홍콩에 있는 우리 아이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국제학교에서 매일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이나, 또는 토요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학우들이 나중에는 서로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큰 힘이 될 것인지를 느끼면서 소중한 우정을 쌓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그리고 유난히 성실한 한국 아이들이기에 가르침이 더욱 보람된 기회를 마련해 준 한국국제학교에 감사를 표한다.

 * 칼럼을 쓴 Ms. Gladys 선생님은 Lehigh University에서 심리학 학사, Columbia University에서 아동 발달심리학 문학 석사, Hunter College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마쳤다. 뉴욕주 일반교육과 특수교육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3년간 뉴욕주의 공립학교에서 학급담임으로 근무한 후 변호사인 남편을 따라 2008년부터 홍콩한국국제학교 이머전 과정에서 초등 6학년 영어담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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