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별장(山頂別墅)
홍콩 예빈부 문밖에는 영문「Governors Residence」라고 적힌 비석이 하나있는데 이 비석은 예빈부에 속해있지 않고, 이전 산정총독별장(山頂總督別墅)의 경계석이다. 홍콩여름의 참을 수 없는 무더위로 인해, 1867년 총독 맥도넬(Sir Richard Graves MACDONNELL)은 산 정상에 방치되어있던 요양원을 사들여 스위스양식의 건물로 건축하고 여름피서용으로 삼음으로써 이 건물은 제1대 총독산정별장(The Mountain Lodge)이 되었다.
그러나 이 별장이 2호 태풍에 의해 파손되면서, 1892년 총독 로빈슨(Sir william ROBINSON)은 원래 있던 곳에 별장을 복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894년 흑사병이 돌면서 그 계획은 시기를 놓치고 연기되다가 1900년 복구공사가 시작되었고, 1903년 제3대 산정별장이 완공되었다.
새로 지은 별장은 산상(山上)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별장의 사용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으로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주요원인은 사실 1908년 예빈부가 선풍기를 추가구입 하면서 이로써 여름 무더위가 그리 괴롭지 않았기 때문에 산정별장 역시 더는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데에 있었다.
1934년 정부는 판닝(粉嶺)에 또 하나의 총독별장을 지었다. 낡은 산정별장은 1946년 철거되었고, 현재는 별장의 경비실만이 남아있다. 원래 별장이 있던 곳에는 후에 산정공원(山頂公園)이 지어졌다. 운송의 어려움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철거된 부속품들이 산비탈에 버려졌다는 것을 현재에도 알 수 있다. 2006년 2월 산정공원이 개선공사를 하던 중 산정별장의 지반이 발굴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예빈부의 과거와 오늘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 후 정부의 전문가들은 일찍이 전(前)총독부의 이름을 「자로(紫蘆)」라고 바꾸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다른 건축물의 이름과 같기 때문에 아직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정부가 세운 홍콩반환조국기념비와 전(前)총독부의 새로운 명칭 짓기 작업그룹이 공개모집하여 얻은「전(前)총독부」의 새 명칭 건의 자료와 사회 인사들이 건의한 명칭은 모두 968건이나 되었고, 정부는 최종적으로「예빈부 禮賓府」를 선택했다.
1968년부터 예빈부는 개방일을 정해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개방일을 매년 2차례로 늘려 대중들에게 참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예빈부의 역사와 임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문사로(選文思路 생각을 위한 글) 요시프 안토노비치 고쉬케비치홍콩대학 도서관에서 발견(Class No. H.K.P 915·125, G67)된 이 본문은 유명한 러시아인인 요시프 안토노비치 고쉬케비치 (Iosif Antonovichi Goshkevichi)가 쓴 글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작가와 관련된 더 많은 자료나 저서를 찾지 못했다.
이 문장은 1855년 작가가 홍콩에 머물 당시, 즉 영국과 러시아간에 크림전쟁(Crimean War)이 일어났던 때 쓴 글이며, 우리는 작가가 해군군관으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포로로 구금되어 홍콩에 머물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장에는 그의 구금에 관한 일, 계급, 그가 속한 배의 이름 등 어떠한 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영국은 중국의 많은 섬 중에서 토지가 그다지 비옥하지도 않고, 민숭민숭하여 중국에서도 크게 쓸모가 없는 작은 섬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작은 섬은 의외로 영국에게 매우 유용하였다. 이 섬은 인도와 태평양의 항로위에 위치한 매우 좋은 항만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이 섬에 도시를 세우고, 중국과 인근 국가에 무역항이 되게 하였다. 이 도시의 정식명칭은「빅토리아」이다. 하지만 이 명칭을 아는 현지주민은 매우적다.
이 섬은 대륙의 열도를 멀리 바라본다. 해안선을 따라 지어진 「황후대도 Queens Road」라 불리는 큰 길(비록 영국여왕이 현재 혹은 장래에도 이곳을 방문할 가능성이 없음에도..)이 있고, 이밖에 평행으로 된 큰길과 수직으로 된 작은 길들이 있다. 큰길과 직각이 되어 산꼭대기 까지 뻗어나 있는 작은 길은 매우 가파르다. 산의 형세로 인해 뒤쪽의 건물이 앞쪽의 건물보다 한 층 더 우수하다. 이런 이유로 산위의 건물은 모두 우아하고 아름다운 항만과 도시를 볼 수 있다.
그밖에 어떤 건물들은 산기슭아래 평지에 지어 졌고, 푸른 숲이 그 건물들을 그늘지게 하였다. 큰길은 林蔭大道(Park Avenue)로 인해 중간에 끊겼지만, 한 지점 방향으로 꼬불꼬불한 오솔길이 있는 공원은 산위까지 길게 이어져있다. 이것으로 인해 본래 민숭민숭하던 산비탈은 현재 푸른 대나무 오솔길과 관목림으로 뒤덮여있다. 이곳에 건물을 짓는 사람들은 모두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대태양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였기에 이곳의 건물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모든 건물에는 베란다 덮개와 통풍이 잘되고 어두침침한 거실이 있으며 블라인드는 가가호호의 필수품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바로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병영(兵營)이다. 미관상이나 실용적으로나 중요시되는 이 건물은 2층높이의 기둥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로마신전 같으며,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을 막아준다.
이제 막 건설된 총독부는 최근 준공 된 화원 중간에 있다. 만약 중축한 부분이 차폐되지 않았다면, 홍콩 최고의 장식품이었을 것이다.
그 밖에 내가 필히 언급해야하는 건축물은 병원건물과 회의소 그리고 개인주택이다. 이 작은 섬의 서남쪽은 일찍이 좁은 길과 중국인의 작은 집들로 가득했었기에 그리 좋은 곳은 아니었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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