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마와시 깨자"… 일본 대학도 비판적 토론수업 도입
공개적으로 의견 밝히는 능력 대학생 돼도 부족한 게 현실
"유학·취업 등 글로벌 경쟁 위해 비판적 사고력 훈련 필요해져"
"잠깐. 지금 내용은 좋지만 아래를 쳐다보고 말하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어."(김경주 교수)
외국에서 배우자 "핀란드처럼 생각 키우는 교육을"김 교수의 지적에 학생은 즉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4대 종교의 발상지는 모두 아시아다. 그만큼 아시아는 비슷한 것 같지만 국가별 특징이 있고 문화적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로 상대방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면서 대화를 확대해야 협력의 분야도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학생은 의견 발표를 할수록 자신의 주장을 더욱 분명히 제시하면서 "그동안 아시아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많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했다.
13일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도카이(東海)대 1호관 A동 402호 강의실. 약 40명의 학생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 토론은 이 학교 교양학부 국제학과의 김경주, 다카하시 유조(高橋祐三), 다카하시 히로아키(高橋宏明) 등 세 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국제 관계의 기초를 토론 방식으로 배우는 이 세미나 과목은 평소엔 한반도·중국·동남아 등 지역별로 구분해 별도 강의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 날은 세 교수가 '합동 세미나'를 열어 학생들에게 더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학생 수가 세번째로 많은 이 학교는 물론 다른 대학에서도 학부 1년생 과목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였다.
이날 세 명의 교수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능력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선 비공개적으로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인 '네마와시 (根回し)문화'가 뿌리 깊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다카하시 유조 교수는 "건설적인 비판 능력 없이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학부 1년차에 비판적인 토론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대학생이 스스로의 지식과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생각을 명확히 밝혀야 하고, 논리와 논거를 갖고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설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배우는 아니지만 부끄러워 말고, 표정·몸짓도 확실하게 해야 설득력도 높아진다"고 가르쳤다.
이들 교수는 "이런 교육을 위해선 교수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카하시 히로아키 교수는 "일본에선 우선 말해도 될지 주변의 눈치를 본 뒤 남들이 말하면 입을 열기 시작한다"며 "중·고교에선 수험 공부 때문에 어려웠지만 대학 교육은 비판적 사고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에게도 토론식 수업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세미나 방식 교육은 평가 절차가 복잡하고 상당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이날 원활한 토론을 위해 학생들을 총 6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책상도 토론에 필요한 구조로 만들었다. 그런 뒤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학생들이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포스트잇을 붙이도록 했다.
학생들은 "고교에서는 이런 토론식 수업을 해보지 못했다"며 "대학에서는 한 가지만 볼 게 아니라 폭넓은 지식을 갖고 판단력을 길러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는 일본 등 동아시아 학생들도 많이 유학을 가거나 외국인 기업에 들어가므로 비판적 주장이 필요해졌다"며 "발표와 토론을 거쳐 스피치 콘테스트까지 시킬 계획이지만 교수도 인내심을 갖고 학생들이 미숙하지만 결론을 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조인스 뉴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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