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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역사 산책] 천주교 성당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06-25 11:19:29
  • 수정 2009-06-25 11: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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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5호, 6월26일
 홍콩천주교에 대한 포르투갈인의 공헌

종교건축물은 항상 신앙단체가 모이는 곳이다. 홍콩천주교의 건축물을 가장 대표하는 것은 당연히 현재 홍콩 Caine Road에 위치한 성모무원죄주교성당(The Hong Kong Cathedral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성당의 건축특색
웅장한 홍콩천주교 성당은 1880년대 건축되기 시작했다. 개항초기 마카오에 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Papa Gregorius ⅩⅥ )는 홍콩을 감목구(監牧區)로 계획하고 1841년 4월 22일 스위스인 교구신부 요셉(Theodore Joset)에게 초대 성당감목을 위임했다.

지금까지 성모무원죄주교성당의 제의실 입구에서 제단으로 통하는 바닥위에는 여전히 그의 묘비가 있다. 비석 정면 벽에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나무로 조각된 성모상이 있는데 이것이 수호성인인 성모다.

감목구를 설립한 후 많은 선교회의 신부들이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와 홍콩에 있는 아일랜드병사와 마카오에서 온 포르투갈인 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최초의 천주교 사회단체가 형성되었다.

천주교인들은 중환 Wellington Street 60-76호와 Pottinger Street 사이의 산비탈에 집회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1842년 6월7일 기초를 다졌고, 1843년 6월11일에 건물을 완성, 성모무원죄성당을 축성했다. 이어 신자들과 신부들이 늘어나면서 증축공사로 이어졌고, 1859년 10월18일에 성당 증축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무렵 큰 불이나면서 중구(中區)의 많은 상점과 함께 성당이 소실됐다.

그러나 성당 안에 있던 Predmont-Sardinia 국왕이 보내온 제단은 소실되지 않고 남았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다.

당시 천주교인들이 지속적으로 늘자 Raimondi Timoleone 고주교는 지금의 Caine Road에 땅을 사서 성당을 재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1881년 12월 8일 기초지반을 다지고, 초석을 세우던 1883년 2월 2일에는 홍콩총독 보웬(Sir George Ferguson BOWEN)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귀빈들이 성당건축행사를 참관하였다.

2년 반 후 성당이 부분적으로 사용되면서 본래 Wellington Street에 있었던 성당은 1886년에 상가로 팔리면서 철거되었다. 새로운 성당은 1888년 12월7일 성모무원죄주일 전날 밤 준공된 성당을 축성하고, 첫 번째 미사를 올렸다.

포르투갈신도의 발자취
홍콩의 포르투갈인과 이탈리아인은 초기 천주교에 크게 공헌하였다. 성모무원죄성당 안에있는 30개의 화강암 기둥의 주춧돌에는 성당을 건축할 당시 기부금을 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포르투갈인 이었는데 당시 성모무원죄성당에「포르투갈 사원」(Portuguese Temple)이라는 외호(外號)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콩에 있던 포르투갈인들의 초기 집회장소 중 하나는 완자이구(灣仔區)의 Star Street 일대였고, 이들의 대부분은 신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進敎圍」(St. Francis Yard)라고 불리던 이 일대는 16세기 동방선교에 힘쓴 성 프란시스 하비에르(Francis Xavier)를 기념하기위해 이 길의 이름을 St. Francis Street로 바뀌었다.

이탈리아인의 선교사업
홍콩개항초기 이탈리아인의 종교적 공헌은 경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기룡(夏其龍)신부의 「홍콩천주교의 성립」(The foundation of the Catholic mission in Hong Kong)의 연구에 따르면 홍콩에 있는 천주교교회의 외방선교사 중에 이탈리아 선교회 사람이 가장 많았다.

홍콩 개항 후 제일 처음 홍콩에 온 천주교 수도회는 1842년의 프란체스코회(Franciscan)와 1860년의 카노시안 수도회(Canossian)였다.

이탈리아인이 중심이 된 성직자들은 홍콩에서 이태리어와 라틴어를 주로 썼으며, 일생 대부분을 홍콩에서 보냈다. 당시 외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에게는 3가지의 주요 항목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세계로」였는데 이것은 이탈리아 밖의 다른 곳에서 선교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두 번째는 「이방인」으로 아직 천주교를 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선교하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일생」이었는데 선교사는 일생을 바쳐 외국에서 선교한다는 의미였다.

그 밖에 이탈리아 천주교인들이 마카오의 천주교건축물에도 공헌을 했다. 마카오에서 유명한 포르투갈 예수회의 역사학자 Manuel Teixeira는 《예수회의 마카오 개교 400주년》이라는 책에서 마카오의 성 요셉성당은 1903년과 1953년 모두 예수회에서 재건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Oseo Acconci의 주관으로 재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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