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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역사 산책] 상환(上環) -1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09-25 11:26:32
  • 수정 2009-09-25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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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7호, 9월25일
홍콩의 중국인사회
중환 시가지로부터 서쪽에 있는 사이잉뿐(西營盤)일대는 홍콩 개항 후 최초로 형성된 중국인 집단거주지역 이었다. 개항 당시 도시건설을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하자 홍콩 인근 지역에서 무직자나 쿨리(Cooly, 중노동에 종사하는 중국인이나 인도의 하층 노동자)들이 일을 찾아 홍콩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초라한 초막집을 짓고 살았고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태평산(上市場), 중환시가지(中市場), Jervois St.(下市場) 일대가 주요 집단거주지역이 되었다.

남경조약이 체결 된 후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로 할양되면서 홍콩 정부는 서양 상인이 주로 거주하는 중환시가지 부근이 관리도 복잡하거니와 지저분하여 서양인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 1844년 그 곳 주민을 태평산으로 이주 시켰다.

중국인과 서양인이 격리되면서 수십 년 후 태평산 일대는 홍콩에서 중국인이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이곳에 문무사당 (文武廟)을 세워 신을 모시고 복을 빌었다. 또한 사람들이 모여 재판을 하는 등 중국인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이 세운 백성사당(百姓廟)은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타향인이 마지막 생을 보내며,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영혼이 머무는 곳이 되었다.

▲ 1930年 文咸東街
▲ 1930年 文咸東街
 1851년 Jervois St. 일대 해변의 집들이 화재로 전소되자 정부는 집들을 부수고 그 잔해로 바다를 메워 만함동가이(文咸東街)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1868년 홍콩정부는 재차 바다를 매립하여 만함세가이(文咸西街)를 건설하였다. 마침 이 때 주삼각폭발(珠三角爆發)이 일어나 상인들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홍콩으로 피난을 왔다.

일부 중국인 자본가들은 홍콩의 자유로운 지위와 뛰어난 조건의 항구를 이용해 홍콩을 중계운송의 중심으로 삼고 북방의 상품을 남양(南洋)으로, 남양의 상품을 내륙으로 운송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남북행」이다. 남북행무역으로 임해의 윙록가이(永樂街)와 만함가이(文咸街)에 약재와 백미 등을 파는 중국인 상점이 운집하여 발전을 거듭하면서 유명한 남북행가(南北行街)를 이루었다.

홍콩 상업 무역 발전이 활발해짐에 따라 재력을 겸비한 동시에 이웃봉사에 열정을 지닌 사업가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들은 홍콩정부의 지지 하에 1870년 업연, 혈연, 지연에 국한된 자선조직인 동화의원(東華醫院)을 설립하였고 식민지 정부가 중국인을 홀대하던 상황에서 중국인에게 의료, 교육, 장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동화의원은 영역을 넓혀 객지에서 죽은 중국인의 유골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낙엽귀근(落葉歸根)-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에 더욱 주력하였고, 외지에 체류하고 있는 교포들을 송환하였다.

이렇듯 동화의원은 홍콩주민과 홍콩정부간에 교량 역할을 하였고 홍콩의 중국인과 해외교포들의 연락 중심지가 되었다. 문무사당과 백성사당이 동화의원으로 발전 한 것은 홍콩중국인이 스스로 다스리고 발전한 과정과 홍콩민간조직발전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것이다.

▲ 合一堂
▲ 合一堂
 홍콩 개항 후 가장 먼저 발전한 중국인 집단거주지역인 상환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예배당이 생겼다. 영국 전도회에서 독립하여 나온 첫 번째 기독교중국인교회 합일당(合一堂)은 오늘날 까지도 여전히 뿐함도(般含道)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다. 합일당은 기독교가 본래 속해있던 교회를 떠나 중국인 스스로 자립하여 형성한 전도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또한 영국에서 창설되었지만 홍콩에서 중국인에 의해 조직화되고 관리된 중화기독교청년회는 「비이역인 내역어인(非以役人, 乃役於人)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는 정신으로 홍콩의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Bridges St.(必列者士街)의 회의소는 오늘날 까지도 존재한다.

이러한 기독교단체는 중국인 집단거주지역에 건립되기 시작했고 서양종교사상의 상징인 도덕관과 가치관은 중국인의 땅에 뿌리를 내렸다.

매판(買辦)은 19세기말에 궐기하여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계급이다. Castle Rd.에 위치한 감당제(甘棠第)는 홍콩이화양행(香港怡和洋行)의 매판의 중추였으며,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전 홍콩의 갑부 하동(何東)의 친동생 하감당(何甘棠)이 1914년 막대한 자본을 들여 건축한 것이다. 외형은 우아하면서도 웅장하고 위엄이 있으며 실내는 높고 크며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어 당시 홍콩 중국 상인들의 재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양인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생활은 날로 서구화되어갔다. 중·상환 일대에는 주로 성당이 있고 소수민족이 건립한 유태인 사당과 이슬람사원도 있었다. 이는 홍콩이 다민족사회였으며 각 민족 모두 홍콩을 고향으로 삼고 홍콩을 번영시키는데 공헌했다는 것을 충분히 반영해준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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