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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함께 백야나라로 떠나는 여행] 나는 지금 러시아로 간다 3 - 비 내리는 레닌그라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11-12 12:43:47
  • 수정 2009-11-19 11: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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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3호, 11월13일
 세찬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깊디깊은 잠, 따듯하고 아늑하고 달콤하다. 전화벨이 울린다. 비몽사몽간에 전활 받는다. 홍콩에 있는 아들이다. 오늘 토요일인데, 아빠는 출근하고 누나는 토요학교 갔는데 자기는 뭐하면서 노느냐고 묻는다. 살인적인 로밍폰 가격이 계산되면서 잠이 확 달아나버린다. 새벽 5시다. 밖이 히끄무리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신 아침이 오겠지 싶어 다시 잠을 청하려다 말고 불안한 기분이 들어 커튼은 열어젖힌다. 비가,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 야속한지고, 어이하여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부터 비가 이리도 주룩주룩 내린단 말인가. 날씨마저 우릴 저버린단 말인가.....

내일부터 제대로 여행을 하려면, 위클리홍콩을 마감해 놔야하니 에라 잘됐다며 일이나 할 요량으로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이 먹통이다. 다른 방은 잘 되는데 우리방은 잘 안된다며 방을 옮기라는 리셉션의 답변이다. 허걱, 이젠 인터넷까지... 제대로 되는 게 대체 뭐란말인가, 이젠 제대로 되는게 하나라도 있다면 덥석 엎드려 절이라고 하고싶다.

방을 옮기고, 나는 비내리는 레닌그라드의 한 호텔에 앉아 마감을 위해 맹진한다. 제니퍼는 어그부츠에 파카, 모자에 장갑까지 끼며 완전무장을 한 후 무기로 써도 이 손색이 없을 호텔 우산을 하나 들쳐 메고 한 때 레닌그라드였던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사전답사 한다며 나폴레옹처럼 늠늠하게 호텔문을 나선다.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를 이야기할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뺄 수 있을까. 땅덩이 넓은 러시아에서 러시아 사람들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도시는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1703년대에 세운 '인공' 도시이다. 유럽의 선진 문명을 동경한 표트르 대제는 동방 스타일의 모스크바를 버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겼다. 유럽식 건물로 가득 채워진 이곳은 유럽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답지 않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강과 고풍적인 건물이 늘어선 이 도시는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등 러시아 문학과 예술이 절정에 이르렀던 도시이다. 그러나 처절한 피의 역사를 가진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건설 당시 추위와 굶주림에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바쳤고, 제정 러시아 말기에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또 제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공습 속에 많은 희생을 치렀다.

어쨌든, 제정 러시아 이후 다시 모스크바로 수도의 자리를 뺏겼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문화와술의 중심 도시로서 러시아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이 도시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2006년 7월 열린 G8회담을 수도인 모스크바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했을 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역사의 수용돌이 속에서 1924년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라드로 바뀌었고, 1980년대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1991년 러시아어(語)의 옛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푸시킨은 그의 서사시 '청동기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 젊은 수도 앞에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어버렸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도시는
어두운 숲 속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
한때... 핀란드의 어부가...
낡아빠진 어망을 던지던 곳,
지금은 생기를 되찾은 기슭에
으리으리한 궁전이며 탑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 선박들이
이 풍요로운 항구를 향해 속속 모여든다.
젊디젊은 왕비를 마주한 홀로된 대비처럼
이 젊은 수도 앞에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어버렸다


-푸시킨의 시 '청동기사' 중-

에르미타쥐 극장 그리고 호두가끼 인형
비에 흠뻑 젖어 돌아온 제니퍼와 함께 에르미따쉬(Hermitage Theatre) 극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호두가끼인형'을 보기로 했다. 호텔을 통해 예약을 미리 했더니 20% 정도 할인 된 800홍콩달러에 관람이 가능하게 됐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발레를 보기위해 속속 등장하는 러시아 귀족들 틈에 끼여 자리를 차고 앉는다.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이런 멋진 공연을 위해서 화려한 드레스 하나 정도는 준비 해왔어야 하는건데... 하며 후회를 하고 있는데, 극장 입구가 갑자기 홍콩 센트럴 시장통 처럼 소란스러워진다. 극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놀라 고개를 돌린다. 6·26때 인해전술을 펼치며 남하했던 중공군의 후예들이 이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것이다.

/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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