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원(東華醫院)
홍콩 중국인 응집력의 상징동화의원은 홍콩에서 중국인에 의해 세워진 첫 번째 자선기구이자 병원이다. 1870년 설립된 이후 중국인을 위해 다민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지방의 정치·경제·사회·교육·자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숭고한 지위에 올랐다. 1911년 광화의원(廣華醫院)이 설립되고, 1929년 동화동의원(東華東醫院)이 설립되면서 오늘날의 동화삼원(東華三院)이 조직되었다.
동화삼원의 기원동화의원은 1869년 매국노와 남북행 상인, 그리고 천·쌀·금산장(사람이 죽은 후 태우는 금색 종이)·공백행 (아편 전문매매)등을 파는 상인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당시 사회는 3만여 원의 기부금을 모아 홍콩 정부에 상환의 보인가(普仁街) 지역의 12에이커(약 48,563m²)를 병원 토지로 매각해 줄 것을 거듭 요청하였으며, 건축비용 11만 5천홍콩달러를 들여 1872년 동화의원이 완공되면서 국내외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웅대하며, 다민족적인 봉사를 제공하는 자선 기구가 세워졌다. 동화의원은 중국인 자선조직의 하나로써 중국인 사회가 날로 성숙되어가며, 중국인 부자들이 증가하고, 중국인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정책이 변해가고 있음을 반영하였다.
개항 초기 홍콩에 온 많은 중국인들은 석공, 쿨리(중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영세상인 등 대부분이 육체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낯선 홍콩에 와서 혈연중심의 종친회, 지연중심의 동향회, 업연중심의 상업조합 등의 조직에 가입하였다. 초기 홍콩정부는 임시변통으로 내륙에서 통용되던 보갑제(保甲制)를 홍콩에 들여와 이화치화(以華治華 중국인으로 하여금 중국인을 다스린다)를 시행함으로써 중국인의 일에 간섭하려하지 않았다. 19세기 중엽이후, 홍콩의 경제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상인들이 대거 나타났는데, 특히 매국노와 남북행 상인들이 가장 빛을 발하였다. 정부는 2차 아편전쟁 당시 홍콩이 동요하여 불안에 떨었던 경험을 상기하고는 홍콩의 안정적인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중국인 지도자 계층의 지지가 필요함을 인식하였다. 1860년대 광복동공사당의 열악한 환경이 서양인들의 책망을 받자, 중국의 인재들은 화인의원(華人醫院)을 설립하여 서양의사의 처방을 원치 않는 중국인이 중의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홍콩정부는 회유정책으로써 중국인들을 구슬려 마침내 동화의원 설립을 촉성하였다.
동화의원 초기의 서비스는 치료하여 약을 나누어주고, 염을 하고 관을 짜주며, 타향에서 죽은 사람들을 본적에 안장시켜주고, 서류소(棲流所)를 설치하여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안치하며, 의학(義學)설립 등을 포함하였다. 동화의원은 홍콩정부의 사회복리가 결여된 시대에 중국인을 위한 서비스의 중책을 맡았다. 또한 태풍, 화재, 수재의 위기에서 사람들을 구제해줄 하나의 생명선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홍콩과 내륙은 서로 의지하고 돕는 밀접한 관계였다. 내륙이 천재(天災)를 당하면 동화의원은 앞장서서 기부금을 모아 조달하여 재난을 구제하였고, 심지어 당시의 총리를 현장에 파견하여 재난 상황을 실지조사 하도록 하였다. 후에, 동화의원은 문무사당 대신 중국인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기관이 되었다. 또한 홍콩의 중국인과 중국정부간의 중개역할을 하였고, 중국인과 해외 동포 사이의 교량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동화의원의 총리는 홍콩 중국인 사회의 공식적인 지도자였다.
동화의원의 간판
사회의 많은 기관들은 140년 동안 사회에 행복을 가져다 준 동화의원에 대련이나 혹은 현판을 보내어 공로를 표창하거나 사의를 표하였다. 그 중 역사적으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1878년 광서제가 가뭄으로 고생하던 산서(山西)의 수재민을 도운 동화삼원에 하사한「神威普佑 신위보우」현판과 민국시기(民國時期) 당시 총통 풍국장(馮國璋)과 서세창(徐世昌)이 보내 온「善與人同 선여인동」과 「急公好義 급공호의」현판이다. 그 외에 이홍장(李鴻章), 증국전(曾國荃), 장광내(蔣光鼐), 채정개(蔡廷鍇), 진동명(陳烔明)등이 현판을 기증하였다. 동화의원 홀에는 유명한 문필가들의 대련이 많이 걸려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라 할 만한 것은 근대 계몽 사상가이며 「循環日報」의 편집장인 왕도(王韜)의 장편의 대련이다. 이러한 현판과 대련은 철획은구(鐵劃銀鉤)하고 서풍주경(書風遒勁)한 것들로써 보기 드문 진품들이다. 또한 백년이 넘도록 행해져온 동화의원의 선행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것들이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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