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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함께 백야나라로 떠나는 여행] 나는 지금 러시아로 간다 7- 경찰서로 달려가?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12-10 11:42:51
  • 수정 2009-12-17 11: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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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7호, 12월11일
경찰서로 달려가?
아침 일찍 눈을 뜬 제니퍼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잠 좀 더 자고 싶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빨리 일어나라고 성화다. 파카에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완전무장한 그녀는 뜬금없이하는 소리가 경찰서로 가겠단다. 홍콩에서 들었던 여행자보험을 들먹이며, 엊그제 산 마트로시카 인형 값을 다만 얼마라도 그 보험에서 받아내겠다는 거다. 러시아 경찰서에 가서 지갑을 털렸다며 신고를 하고 확인증을 받으면 홍콩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단다. 러시아에서는 지갑 털리는 게 부지기수라 의심받지 않고 금방 받아낼 수 있을 거란다. 방문을 나서는 그녀를 내가 황급히 불러세운다

"제니퍼, 이건 아닌 거 같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찰과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안 좋고, 더구나 공산주의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되는 이런 무시무시한 러시아 경찰에게 허위신고를 하다 잘못되면 그 뒷감당을 다 어찌할 것이며, 망신살이 뻗치면 후손 3대까지 미치고도 남을거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그녀.

"그래 언냐, 생각해 보니 글타. 글찮아도 내 운이 무시로 꼬이고 또 꼬이더마 경찰서까지 가믄 아마 내 인생 극으로 치닫을기다. 내 그냥 포기할란다. 대신 내 남편더러는 지갑을 털려서 현금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할란다. 인형을 수백만원어치 샀다면 내 집에서 쫓겨날기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그녀. 몸은 괜찮냐, 다친덴 없냐, 무섭진 않더냐고 걱정하고 위로하는 제니퍼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려온다.

마트로시카 처치작전
오늘도 아침은 조촐하게 먹기로 한다. 선물센터로 가는 길에 있는 맥도널드로 들어가 아침세트를 시켜 먹는다. 맛이 너무 너무 좋다. '러시아에는 야채가 아주 부족하다더니 이렇게 싱싱하고 푸짐한 야채가 햄버거에까지 가득한데, 부족하긴 뭐가 부족하다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며 햄버거 하나와 프렌치프라이스, 커피 한 잔을 깨끗하게 비운다. 러시아의 맥도널드 인테리어에서는 중후한 멋까지 느껴지고, 북적이는 홍콩과는 달리 손님이 거의 없는데다 음악도 잔잔하게 흐르는 것이 참으로 쾌적한 느낌까지 든다.


 
선물가게 오픈시간 10분전에 도착해 기웃기웃 거린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엊그제 근무했던 그 남자직원 하나와 여자 매니저가 반갑게 맞는다. 우리는 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금방이라도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릴 것 같은 처량한 얼굴을 한다.

"아주 미안한데, 우리 엊그제 이 인형 샀잖아. 사실 우리가 환율계산을 잘못해서, '0' 하나를 빼먹었지 뭐야. 그거 아니? 이 인형 값이 우리 비행기 값보다 훨씬 비싸다는 거. 우리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대로 홍콩 못 돌아가. 이 인형을 다 반납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는 살테니 부디 우리의 처지를 헤아려 선의를 베풀어주길 바래."

와락 울어버릴 듯 목소리까지 떨면서 말을 차근차근 하는 제니퍼를 보면서 그 연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순간 그들이 고민이 빠진다. 잠시후, 살풋이 웃으며 반환할 인형을 꺼내 놓으란다. 우와~~ 나와 제니퍼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쁨과 흥분에 가득차서 샀던 인형의 1/3을 꺼내 놓는다. 그들이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제니퍼가 신이 나서 말을 잇는다.

"있잖아, 우리는 그날 이후, 잠도 설치고 돈이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닌다니까. 오죽하면 아침부터 맥도널드로 때웠겠니."

젊은 남자 직원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너네 그거 모르는 구나. 러시아에서는 맥도널드가 고급식당이야"

"그렇구나. 몰랐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없었구나. 그런데 내가 러시아에 와서 만난 사람들 중 네가 가장 친절한 것 같다. 러시아 사람들은 왜 다들 그렇게 화난 거 같고, 불친절하니?"

"흠.. 화난 거 같다고? 화난 거 같은 게 아니라 러시아인들은 정말 화가 난거야. 우리는 이렇게 주6일을 밤늦게까지 근무해야 해. 반면 월급은 아주 쥐꼬리 만큼 받지.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와 쇼핑하고 즐기면서 물가를 올려놓지.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상대적인 빈곤감에 허덕이지."

"아, 그렇구나. 미안해. 그러나 너의 고마움은 평생 잊지 않을 게"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공포의 마트로시카 일부분을 무사히 반환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래도 우리 손에 든 인형 값은 1백만원에 가깝다. 아! 아직도 난 이 러시아 인형이 무섭다. 당분간 얘들이 꿈속에 나타나 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야 겠다.

이제 짐을 챙겨 모스크바로 가야한다. 3일 동안 뻬쩨르(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는 동안 정이 들었는지 웬지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아와 유럽, 동방과 서방 사이에 끼여 이들 모두의 문화와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풍스러운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쉽게 올 수 없는 곳이지만 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이곳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방문했고, 또 많은 추억이 탄생했기에 이곳을 평생 기억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푸시킨, 그리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그 모든 순간 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기억할 것이다.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글&사진 로사 <A href="mailto:rosa@weeklyhk.com">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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