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당 소장품
합일당에는 이 방면의 많은 진귀한 문물과 자료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홍콩, 중국 기독교회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합일당에는 문물실이라는 곳이 있는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진귀한 문물과 문헌이 소장되어있다. 예를 들어 쑨원기념관에서는 합일당에 소장되어 있는 《런던선교회 선교 백주년기념 병풍》, 《도제회당사략》,《도제회당 회우 기념사진 원본》, 《천도하제(天道下濟)》액자 등을 전시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매우 진귀한 것들이다.
이 액자는 공리회와 도제회당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어준다. 또한 공리회당과 도제회당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쑨원이 항시 서의서원 근처에 있던 도제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회를 가졌던 이유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교회의 자립은 교회의 본국화, 민족적 의의 그리고 애국심이 은밀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교회자립, 인사자립은 서방 사조의 영향을 받아 추진되었고, 사상개방은 청나라 말기 열강들이 중국을 엿보던 정국 하에 민족자주의 이상이 촉구되면서 중국정치개혁의 열정이 치솟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왕욱초 목사를 비롯한 구봉지, 하계 등 도제회당의 핵심인물들은 복음을 전하고 정치개혁을 논하였다. 그래서 도제회당은 당시 신학과 시정을 논하는 혁명세력이 응집하는 장소였다.
구봉지는 쑨원의 국문선생님이었는데 둘의 관계는 매우 친밀하였다. 쑨원은 홍콩서의학원에서 의학을 배울 당시 구봉지선생의 의견들이 큰 힘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다녔다. 쑨원은 런던에서 박해를 받을 당시 구봉지 선생에게 당시의 상세한 상황을 편지에 써서 보냈는데 이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쑨원기념관에서는 이 편지의 복제품만을 전시해 놓았다.
하계는 쑨원의 의학선생님이었는데, 쑨원의 초기사상은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쑨원의《上李鴻章書》를 보면 하계선생이 발표한 정론과 이곡동공(異曲同工)이담겨있다. 하계선생은 흥중회(興中會)의 회원은 아니었지만 쑨원의 개혁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1895년 광주봉기 그리고 1900년 쑨원과 이홍장(李鴻章)이 합세하여 兩廣獨立 활동을 계획하는데 있어 하계선생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 도제회당의 왕욱초 목사와 그의 아들 왕총혜 (王寵惠), 장로 구봉지와 그의 사위 Dr. 윤문해, 장로 황승(黃勝)과 그의 아들 황영상(黃詠商) 등은 모두 흥중회의 인사들로 서로 은밀하게 왕래하였다. 심지어 흥중회의 혁명 활동에 참여하여 청조 말 혁명 사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합일당의 소장품은 청조에서 민초에 이르기까지 혁명과 관련된 문물인데 그 수가 매우 많다. 이는 근대역사를 연구하기위해 보존해온 자료들이다.
<홍콩의 역사산책 발췌, 정신표(丁新豹)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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