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 (63)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11-02 11:21:09
  • 수정 2016-12-21 18:44:10
기사수정
  • [제101호 11월2일] 어떤 젊은이의 슬픔 긴 사연 짧은 휴가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휴가라고 하던대 벌써 돌아왔어요..
[제101호 11월2일]

어떤 젊은이의 슬픔


긴 사연 짧은 휴가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휴가라고 하던대 벌써 돌아왔어요?"
  "아 뭐 별로 재미도 없고 오랜만에 왔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서…"
  "계획보다 열흘이나 빨리 돌아올 만큼 섭섭한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가족간에 섭섭한 점이야 늘 있는 거지만, 베풀고 살면 살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드는군요.  휴가철은 물론이고 외국 출장으로 고향 근처만 가도 집에 가곤 했지만 이젠 혼자 즐기며 살아볼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노총각 R은 집안의 살림밑천 역할을 톡톡히 해온 요즘 보기 드문 '알뜰 장남'입니다.  외국인으로 홍콩에 와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두 동생의 학비를 대고 부모의 은행 융자금을 갚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평생 소원했던 애완동물 가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자금까지 조달해주었습니다.  그도 한때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생각을 했으나 그럴 경우 고향의 가족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고려하여 무기한 연기해버렸다고 합니다.  그의 이번 휴가도 부모의 결혼 50주년 금혼식 깜짝 파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친척들과 친분 있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파티 준비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 속엔 한 쌍의 커플반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파티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한 친척이 R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자네 부모가 정말 부럽군.  이렇게 자상한 아들이 돌봐주니 상처도 금방 아물거야."  "네? 상처가 아물다니요?"  "아 요전에 교통사고 났을 때 다친 다리 말이야." "교통사고라니요?" 뭔가 잘못된 낌새를 챈 친척이 꽁무니를 빼고 사라지자마자 부모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어… 여름에 네 엄마가 무턱대고 길을 건너다 일을 당하긴 했지만 심한 건 아니야."
  "병원에 입원했을 정도라면 심한 거 아닙니까?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죠?"
  "심각한 게 아니라니까.  물리치료만 더 받으면 곧 낫는다더라."
  "아니 그럼 지금 물리치료까지 받고 있단 말입니까? 제가 집에 온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 다들 감쪽같이 숨겨온 거잖아요!  오늘 이 파티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보나마나 저 한 사람뿐이겠군요!  그런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종일 실실 웃어대고 있었다니!"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사실 너한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니, 곁에 있지도 않는 자식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R은 자기가 실수로 남의 악몽을 대신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라니요?  내가 지금껏 가족을 위해 어떻게 희생하며 살아왔는지 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희생?  그래,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우리들이 네게 죽을죄를 졌구나.  그렇지만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늙어가는 부모 곁에 없는 자식인 것은 사실 아니냐?  네 딴에는 멀리서 노력한다고 해도 곁에 살면서 돌봐주는 자식에 비하면 한계가 있는 거고."

내 인생은 대기 중

  "애들 학교에 들어가면 운동하러 다녀야지…"
  "일단 5 킬로만 빠지면 새 옷 좀 사 입어야지…"
  "승진만 하고나면 취미생활도 즐기고 인간답게 살아야지…"
  "남자친구만 생겨봐라,  당장 코사무이에 놀러 가야지…"
  "사십 넘으면 해마다 정기검진 받아야지…"
  "와이프가 해산하면 담배를 끊어야지…"
  "조금만 더 버티자, 연말 보너스 나오면 퍼머하러 가야지…"

  R이 처음 홍콩에 왔을 때도 그런 생각들뿐이었다고 합니다.  "동생들 대학만 졸업하면 J에게 청혼해야지…"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간 후 지금껏 기다렸는데 몇 년 더 기다려주겠지, 일단 집안 융자금부터 갚고 나서 결혼하자고 해야지"하며 미루는 동안 그의 오랜 사랑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떠났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의 사랑이 찾아왔다 떠나가고 홍콩에서 자기가 바라던 사업을 차릴 기회가 왔을 때도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나 좋자고 모험을 하기엔 아직 일러.  부모가 하고 싶다는 애완동물 가게부터 차려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하며 자신의 꿈을 다시금 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인생의 크고 작은 기회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그렇게 바라보는 가운데, 갓 스물이던 알뜰한 청년 R은 흰머리 듬성한 중년이 되었습니다…

  성격이 급해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통화 대기음을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를 포기(?)해버리고픈 유혹의 속삭임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꼭 지금이 아니라도 되잖아?  시간이 아깝지도 않아?  일단 접어두고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면서 질기게 수화기를 붙들고 있군.  서둘러서 좋을 건 없어.  지금이 아니어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구…"

  그렇게 스르르 수화기를 내려놓듯 흘려보낸 일 가운데 '무기한 연기' 돼버린 꿈들을 아쉬움 속에 돌아보고픈 가을입니다.  차마 뛰어들지 못한 일들, 섣불리 포기해버린 도전, 꽁무니 빼듯 떠넘겨버린 절호의 기회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스쳐 지나는 것을 바라보는 당신.  그렇게 하염없이 대기 중인 당신 손에 들린 번호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우선순위는 그 누가 정해준 것입니까?

라이프 코치 이한미 (2647 8703)
veronica@coaching-zone.com
www.coaching-zone.com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3)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