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호, 2월17일]

지금은 재충전 중
  "그럼 지금 무슨 일을 하시죠?"
  "전에는 소호에 와인바를 하나 오픈해서 경영했었죠.  그런데 그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종업원 관리도 중요하고 제가 잠시라도 업소를 돌보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나서 사생활을 가질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젠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인데 연애할 시간도 없으면 곤란하잖아요?"
  "그건 그렇죠. 근데…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아 예, 와인바를 정리하고 나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는 중이지요.  말하자면 더 큰 도약을 위한 재충전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셈이죠 하하."

  당장 하는 일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시내에 와인바를 열 정도의 능력이면 아예 무능남은 아닌 듯한 T.  이 남자와 잘 된다면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해 그걸 키워가는 재미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푼 Y는 속으로 가만히 따져봅니다.  '전망도 없는 삼류 무역회사에 금쪽같은 내 젊음을 바치느니 차라리 내 앞에 앉아있는 바로 이 남자의 사업적 잠재력을 키워주는 게 훨씬 더 보람이 있을지도 몰라.  생판 모르는 남한테 내 돈 주고 투자하느니 이 사람한테 투자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이십대 여성 Y가 본격적인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T와 사귄 지 4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Y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T.  요즘 그는 약혼녀가 회사에 출근하고 나면 집안일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냅니다.  와인바를 정리한 이후 다른 일을 찾아 이래저래 궁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던 것도 잠시 지금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Y에게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의 부모도 그런 아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아 요리조리 피한다고 합니다.  한때 주목받던 청년 사업가 T는, 수중에 잔돈 한 푼이 없어도 걱정을 하거나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명 "니트족"이 돼버린 것입니다.

전망좋은 연인
  니트족(NEET族)이란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약자로,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학교에 가거나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15~34세 사이의 청년을 가리킵니다.  경기침체기인 1990년대 영국과 유럽의 고용환경 악화와 취업난으로 생겨났다는 니트족.  그런데 요즘은 무업자(無業者)의 선을 넘어서 아예 일자리를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비(非)구직 니트족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나마 한 가닥 구직의 의사라도 있는 니트족을 백수라고 본다면 비구직 니트족은 프로 백수쯤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노동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기준 국내의 니트족은 121만4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젊은이들이 교제상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저는 요즘 유행하는 니트족입니다"라고 밝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Y가 T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 재충전중이라고 밝혔습니다.  Y는 그런 그의 말을 믿어버렸을 뿐입니다.  사실 그의 말을 덜컥 믿어버리고 싶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제 막 알게 된 T라는 남자를 동등한 입장에서 차분히 사귀면서 호감을 키워가기보다 그가 마치 자기 앞에 주어진 프로젝트라도 되는 양 떠맡아버린 싱글녀 Y.  그와 사귀는 것을 별 볼일 없는 직장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돌파구로 여겨 만남 자체의 의미를 흐린 계산적 시각.  Y는 요즘 아침잠에 빠진 T를 뒤로하고 예의 삼류 무역회사로 향합니다.  결국 그 회사도 그녀가 생각했던 만큼이나 전망 없는 회사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당신의 인생 경로를 뒤바꿀 최적의 커리어, 평생의 배우자, 놓쳐선 안 될 절호의 기회 등이 바로 곁에 다가와 있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감지해낼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은 인생의 전망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각을 가졌습니까?

라이프 코치 이한미 ICC, CTP (T: 2647 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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