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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4] 1탄- 광견병(狂犬病) 소동
  • 위클리홍콩
  • 등록 2022-07-29 10:46:19
  • 수정 2022-07-31 17: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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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개: 김운영 회장의 생활 칼럼 시즌 4가 시작됩니다. 이번 시즌에는 김운영 회장의 개인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춰 그의 삶 주변인들과의 관계와 생활 속 에피소드에서 깨우친 교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시즌 4는 <광견병 소동>, <도박과 비즈니스>, <딸의 직업 선택>, <결혼 프로포즈>, <교통 사고와 안전 운행>, <해외에서의 신앙생활>, <비즈니스맨의 건강관리>, <효도 여행>, <아름다운 석양>입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인>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시골집에서 기르는 개는 암수 한 쌍이었으며 강아지도 2마리씩 딸려있었다. 60년대 당시의 시골에서 키우는 개들은 토종이라 덩치도 상당히 컸으며 어미 개가 작은 송아지만 한 큰 개였다. 오늘날같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종류의 애완견과는 아주 다른 종류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들과 같이 뛰어놀았으며 강아지들이 잘 따라다녀서 우리는 다정한 친구였다. 특히 장난감이 없었던 시절이라 강아지가 우리 어린이들에겐 항상 놀이 친구였다.

 

그 당시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놓으면 많은 쥐들이 곡식을 망가뜨리고 먹어버리는 일들이 번번이 발생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곡식이 있는 창고나 쥐가 다니는 곳곳에 쥐약을 밥에다 섞어놓아 쥐를 잡는 경우가 일상의 일이었다. 시골 학교에서도 '쥐잡기 운동'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쥐를 잡아서 쥐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학생들에게도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종종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들이 쥐약을 섞은 밥을 실수로 잘못 먹고 죽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들도 쥐약을 실수로 잘못 먹고 고통 속에 달려 나가 들판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누이와 함께 엉엉 울면서 마치 가족이 죽은 것같이 슬퍼했다. 그리고 양지바른 언덕에 사랑하는 강아지들을 장사지내듯이 고이 묻어주었던 어릴 적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에 강아지들이 죽고 없으니 어미 개에 집착한 나머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들이 밥을 먹을 때에도 항상 옆에서 먹이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밥 먹는 어미 개의 먹이통을 무심코 손으로 만지다 손가락을 물리고 말았다. 아무리 유순한 동물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먹이를 먹는 동안 방해한다든지 먹이 밥을 손으로 만지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공격을 해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광견병 백신을 개에게 접종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개에 물린 후에 광견병의 무서운 피해를 면하기 위한 민간요법으로 물로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씻은 후 개털을 불에 태워서 상처 부위에 어른들이 발라주었다. 그리하여 운 좋게 간신히 광견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튼 어미 개에 물린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흉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아픈 사연이었다.

 

내가 중국에 공장을 짓고 나서는 어릴 적에 좋아하던 개들을 공장에서 마음껏 기르기 시작하여 약 10마리 정도가 되었다. 이때가 마침 중국에서 광견병이 매우 유행하였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광견병 예방 주사약이 당시에 비쌌지만, 어릴 때의 아픈 기억에 어미 개는 물론 강아지들까지 접종 관리를 하였다.

 

"미친개에 물리면 약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가끔 떠올리며 나름대로 철저히 관리하였다. 그런데 많은 개를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길렀고 먹을 사료도 충분히 주었기에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던 강아지들이 종종 공장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나의 외국 출장 기간 중에 우리 공장 안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강아지 한 마리가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던 사실을 미처 챙기지 못하였던 15년 전쯤 어느 한 해의 구정(春節)이었다. 아들 다니엘(광범)이 구정 때 공장을 지키고 있는 아빠를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다. 공장에서 근무 중인 아빠를 엄마와 같이 방문하여 공장 내의 숙소에서 모처럼 세 명의 가족이 구정 휴가를 함께 보내게 되었다.

 

공장 내에서 평소에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던 아들이 강아지들과 재미있게 놀며 장난을 치던 중, 부주의로 강아지 한 마리가 아들의 손을 물어 상처가 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의 상처를 소독해주고 간단히 상처 부위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저녁 시간에 미국에 있는 딸 보람이와 전화 통화 중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의대생이었던 딸에게 들었다. 남동생이 개에 물렸다는 사실에 대하여 상당히 우려하며 즉시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상담하고 광견병에 대한 즉각적인 체크와 조치를 하라는 얘기였다.

 

중국 의사를 만나서 진료 중 여러 가지 새롭게 알게 된 광견병의 치사율로 더욱 공포에 떨게 되었다. 중국의 광견병의 치명적인 살상력의 무서운 소식이었다. 이 중국 의사는 아직 광견병에 대하여 아무런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고, 매년 중국에는 결핵 등과 같이 광견병으로 죽는 환자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하였다. 그 당시 들판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의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려면 한 마리당 2번의 예방접종 비용이 공원의 한 달 월급 수준이었으니 대부분 접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아들을 물었던 강아지가 만에 하나라도 광견병 균이 있었다면 아들의 생존이 문제가 된다니 눈앞이 캄캄하여 가족들 모두가 멘붕 상태가 되었다. 혼비백산한 우리 가족은 그 날밤 공장 근처의 작은 병원을 떠나서, 야간에 몇 시간을 이동하여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갔다.

 

큰 병원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크게 놀란 사실은 소도시와 똑같이 여기에서도 우리 아들과 같이 개에 물려서 광견병을 의심하여 긴급하게 치료를 위하여 찾아온 많은 사람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접근하여 많은 돈을 요구하며 신비의 신약이라고 약을 파는 사기꾼이 있는 아수라장 같은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생명이 위급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세상 말세의 광경이 여기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딸과 미국 전문의 그리고 중국의 담당 의사들과의 통화와 협조로 광견병에 전염되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되어서 한바탕의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애완견만 보면 그때의 험악했던 상황이 되살아나곤 한다. 물론 지금도 나는 애완견을 기르지 못하는 이유가 아들의 광견병 관련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몇 년 전에는 중국에서 광견병 가짜 백신이 나왔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기도 하였다. 

광견병 공포증에서 벗어난 지금도 길을 가다 큰 개를 만나면 물릴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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