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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연의 미술도시, 홍콩] [1] 고물도 미술이 될 수 있나요? HKMoA의 호안 미로 전시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06-23 10:02:23
  • 수정 2023-06-30 15: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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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호안 미로, 여인과 새(Woman and Bird) 1967, 미로가 직접 길거리에서 모은 다양한 고물들로 만든 유아적 이미지의 여인과 새 시리즈 [그림 2] 호안 미로, 소브리테이심 6(Sobreteixim 6), 1972, 큰 직물에 덧붙이는 작은 천 조각을 의미하는 전통 카탈루냐어 소브리테이심 시리즈[그림 3] 호안 미로, 페인팅(Painting), 1933, 구도가 결여되어 배치된 불규칙한 생명체 같은 형태, 가면, 별, 구불구불한 선 등으로 구성된 회화

전시장 중앙에는 나무 벤치, 상자, 냄비 뚜껑, 모자, 작은 돌 같은 고물에 청동을 주조해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천진난만해 보이는 사람 형상의 조각이 있다[그림 1].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버려진 자루를 캔버스 삼아 밧줄과 털실을 덧대고 엉망으로 색칠한 것 같은, 회화도 조각도 아닌 경계가 모호한 직물이 벽에 걸려 있다[그림 2]. 어린아이들이 마치 자기들이 그리고 만든 것 같은 별과 달, 사랑스러운 새와 여인, 익살스러운 괴물 등이 등장하는 이 전시장에 방문한다면, 작품들을 보고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까. “이런 고물도 미술이 될 수 있나요?”

 

이렇게 고물들로 만들어진 것들은 HKMoA에서 전시 중인 스페인의 현대미술 작가 호안 미로(Joan Miró, 1893-1983)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미로는 길거리에서 직접 모은 다양한 고물들로 특이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초현실주의 화가인 흐물흐물하게 녹아 버린 시계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나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신사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998-1967)와 같이 어둡고 몽환적인 느낌은 아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새로운 예술적 표현방식으로 이성적인 의식이나 선입견, 의도를 배제하고 본능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오토마티즘(automatisme)을 사용했다. 미로 역시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던 1920년대에 파리로 이주하여 무의식을 시각적으로 분출한듯한 초현실주의 회화들을 작업했다[그림 3]. 그러나 그는 자신을 초현실주의라는 사조에 가두지 않고 미로의 뿌리였던 카탈루냐의 민속공예나 원시미술, 동아시아의 서예 등을 받아들이고 실험하여 미로만의 확장된 세계를 만들어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평범한 사물을 통해 예술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미로의 작품들이 잔잔한 감동과 유쾌함을 동시에 전해준다. 

 

HKMoA가 내세운 전시의 제목은 《일상의 시, The Poetry of Everyday Life》이다. 이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가진 시적인 특성을 포착하여 작품에 실현하는 미로의 독특한 시각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미로의 작품으로 구성된 ‘오브제(The Object), 시와 물질(Poetry and Matter), 포크 아트(Folk Art), 포스터 아트(Poster Art), 공공 미술(Public Art)’ 부분과 미로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구상한 미로랜드(Miroland), 드림 위드 미로(Dream with Miro)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로는 꿈을 꾸듯이 자유롭게 그려낸 시각 요소와 작가 자신, 우주, 상상력을 상징하는 새, 달, 별, 여인 등의 모티브로 유명하다. 미로의 작품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부분은 이러한 미로 만의 시그니처 시각 요소들을 포함한 공통적인 모습이면서도, 미로의 시기별, 지역별로 다양하게 변주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PLACE: 홍콩미술관 (Hong Kong Museum of Art, HKMoA) 


침사추이의 유명한 시계탑을 지나 해변가로 걸어 들어오면 만날 수 있다. 홍콩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동양 고전미술에서 서양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전시를 보여준다. 미술관 2층의 작은 야외 공간에서 저녁 8시마다 열리는 레이저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츠를 감상하면 빅토리아 하버 위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 4] 호안 미로, 여인과 새 시리즈, 1967[그림 5] 호안 미로, 여인, 1970[그림 6] 호안 미로, 여인, 1973

칼럼 소개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서울대 기초교육원 학부생 글쓰기 상담 튜터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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