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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나라 이집트 여행기 (마지막 회)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10-27 1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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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호, 10월28일] 카이로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응큼한 이집트 남자, 불쌍한 그들의 여자   룩소르에 있던 맥도널드에서 ..
[제100호, 10월28일]

카이로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응큼한 이집트 남자, 불쌍한 그들의 여자
  룩소르에 있던 맥도널드에서 신전 저 너머로 아름답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행복감에 젖어 있던 우리는 밤기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다시 온갖 이집트인들이 달라붙으며 뭔가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기차역으로 들어서니 우리를 붙드는 사람들이 저만치 돌아서 갔다. 기차역은 우리나라 60년대 시절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흙먼지에 뒤집어 쓰인 채 사람들로 웅성거리고 있
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관광경찰들과 역무원들이 잔뜩 웅크리고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모습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길을 묻는 척 하며 엿보니 세상에나, 그건 다름 아닌 'Play Boy'지였다.  아이구 민망해라!!.  

  이집트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나 딸 등은 차도르로 꼭꼭 싸매서 집안에 가둬두고 자기네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응큼하게 침을 흘리며 낄낄대고 있다.  속에서 열불이 나서 있는 대로 한 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옆에 차고 있는 장총부리가 바로 내 이마로 향할까 두려워 슬그머니 돌아서 왔다.  

  역내 가판대 꽂혀진 책 표지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모습이 심상찮게 그려져 오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여행 끝자락에 배탈이 난 서진
  밤 침대기차가 도착했다.  카이로에 있는 여행사 사장은 같은 기차에 선교사 일행이 탔으니 아침에 만나서 함께 시내로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서진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입맛이 없다며 저녁도 안 먹은 아이가 뱉어내는 건 없었지만 자꾸 토악질을 했다.  서진이의 얼굴은 우리가 아래 지방을 빙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올 때쯤 되니 반쪽이 되어 있는데다 입술은 바짝 말라 터져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그동안 힘든 여정을 잘도 따라다녀 줬다 싶더니 급기야 탈이 난 것이다.

  기차에서 내려 선교사 일행과 만나 봉고차를 얻어 타고 친구 집이 있는 뉴마디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서진이는 설사를 하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먹기만 해도 토해냈다.  이집트의 병원에 잘못 갔다가 송장돼 돌아온다는 말을 익히 들어온 터 병원 갈 엄두도 못 내고, 근처 약국에 가서 증세를 얘기하니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약을 바로 건네줬다.  모르면 몰라도 서진이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외국인이 다반사일 게다.  

  여행 8일째 되는 날, 서진이의 뜻하지 않는 배앓이로 모처럼만에 '무위도식'하며 시원한 집에서 뒹굴거리니 속은 편했다.

아래층에 사는 이집트 여인
  이집트의 한인촌이라 불리는 '마디'지역은 부촌이다.  이 지역에 사는 이집트인들은 여느 지방과 입성부터  다르다.  우리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밖에만 나가면 만나는 이집트 여인은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다. 아니, 이집트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활짝 활짝 잘 웃는다.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그 여인과 손짓발짓으로 얘기하다 기념으로 사진을 두어 장 찍어줬더니 그 집 아이들도 달려 나와 사진 찍어달라고 난리고, 지나가던 과일장수 총각도, 빵 팔이 소년도 디지털 카메라가 신기한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문구멍으로 내다봤다. 흑단같이 검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한 여인이 정열적인 붉은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거실로 들어선 그녀는 다름 아닌 조금 전의 그 여인이었다. 사진을 찍어 달란다.  서진이와 나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빨간 원피스뿐만 아니라 차도르가 아닌 일반 옷과 액세서리들을 비닐봉지 가득 넣어가지고 와서 온갖 치장을 한 후 카메라 앞에 섰다.

  아, 이 여인은 얼마나 '한 여자'이고 싶었던 것일까?  저 길고 예쁜 머리도 세상에 내 놓고 싶고, 크고 예쁜 눈과 선정적일 만큼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저 입술도 얼마나 드러내고 싶었을까?  오죽하면 저렇게 짐까지 꾸려 와서 자신의 눈이 아닌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했을까?

차선도 인도도 신호등도 없는 카이로 거리
  서진의 상태가 좋아져 나는 다시 서진이를 이끌고 카이로 시내로 나섰다.
  이집트는 정말이지 혼돈의 도시다.  4차선, 6차선은 되는 도로에 차선이 없다.  이리저리 뒤엉켜 빵빵거리다 전 속력으로 달려드는 차들을 피해 길 저편으로 건너는 것은 차마 난이도 높은 곡예다 싶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 속을 뚫고 잘도 지나갔다.  우리는 길 가에 서서 이제나 저제나, 마음 좋은 기사가 차를 세워주고 우리를 지나가게 해줄 까 싶어 기다리고 있었지만, 10분이 흘러도 상황은 꼭 같았다.  

  카이로에 인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인도가 인도의 역할을 못한다.  조금 걷다보면 아름드리나무가 심겨져 있어 도로변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그러면 뒤에서 달려오는 차의 속력이 무섭다.  간신히 나무를 피해 5미터쯤 걷다보면 대형 간판이 떡 길을 막고 서 있다.  대체 이건 걸으라는 거야, 아님 차도를 걷다 죽든지 살든지 하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를 안내했던 여행사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얼마 전 한국여행객이 이집트에 와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사망했다고...  이런 교통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한국인 여행객도 벌써 여러 명이 봉변을 당했다고, 절대 차 조심 하라고...

  서진이와 나는 끔찍한 카이로 시내를 곡예 하듯 걸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떠날 짐을 챙기는데 서진이가 행복해 죽겠다고 난리다.  동생 진호가 너무 보고 싶어 죽겠다며 동생타령을 했다.  저도 아프고 나니 엄마 없이 아팠던 진호가 새삼 불쌍하고 그리웠나 보다.

도로변의 짓다 만 주택들, 그리고.... 집으로...
  이집트 도로변에 있는 집들은 다 짓다 말았다.  참 신기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연기도 나고, 빨래 줄이 끊어져라 걸린 많은 옷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음을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집트는 집이 다 완성되면 주택세를 받는데, 저렇게 다 완성되지 않은 건물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다 집을 반만 짓고 저러고 산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나라다.

  15시간 가까이 되는 긴긴 하늘길을 돌아 서울로 돌아왔다.  내 나라의 공기로 숨 쉰다는 사실만으로 행복감이 뼈 속까지 스며든다.  아, 이런 게 여행하는 맛이다.  

  질질 끄는 무거운 짐이 내는 소음이 심했던지, 아님 엄마의 기가 전달이 됐는지 진호가 시댁 대문께에 나와 삐끔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던 아들은 이집트를 헤매고 돌아온 엄마를 보자마다 정신없이 달려들어 품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 끝.

<그 동안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 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소재로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로사 권>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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